살아오면서 사랑의 회초리 한 대 맞지 않고 자란 자식은 불행하다. 살아가면서 사랑의 회초리 한 대 맞고 자란 자식은 행복하다. 
언젠가 대학생이 된 딸이 고백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작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아빠에게 회초리를 맞았던 일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고. 학교나 집안에서 사소한 거짓말을 하려다가 회초리의 기억을 떠올리면 생각이 접혀진다고. 딸의 고백에 따르면 그때의 회초리가 살아가는 길에 백약(百藥)의 효험이 되고 있는 것인데, 정작 회초리를 든 당사자인 나는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회초리를 ‘사랑의 매’라고도 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어느 정도 선에서 용서를 해주고 어느 정도 사안에서 매를 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매를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 누군가는 집안에서 아이들을 훈육할 역할이 필요하고 결국 내가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회초리로 다스린 것은 초등학교 시절 잠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목말을 태워주거나 장난치며 스킨쉽을 강조하는 내게는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그때그때 상황이 퍽 고민스런 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심정을 몰랐을 것이고 부모가 되어 보지 못한 아직은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리라.
나이 들어가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는 내 나이 다섯 살 무렵 떠나셨다. 그때 어머니는 서른 중반에 불과했다. 지금 젊은 사람들 나이로 치면 혼인하는 연령대와 비슷하다. 그토록 일찍 영면한 탓에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하늘에 올라본 기억도, 손을 꼬옥 잡고 오솔길을 돌아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온 기억도 없다. 더구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은 추억꺼리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아버지와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추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나는 아버지와 도란도란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정담을 주고받는 부자(父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정말 부자(富者)로 보여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설사 돌아가신 분이라고 하여도 아버지와의 감꽃 향기 나는 추억을 반추하는 자식들을 접하면 부럽기만 하다.
일찍 돌아가실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셨는지 아버지는 일절 회초리를 들지 않으셨단다. 어머니의 회상에 따르면 다정다감하신 아버지는 회초리는 고사하고 큰소리 한번 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느그 아부지는 인정도 많았어. 느그들 얼매나 이뻐했던지 돌아가실 때까장 한 번도 매 한번 든 적 읎고 소리 한번 질러본 일 읎다.” 오히려 그런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가끔 아이들을 혼내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언젠가 둘째 누님은 아버지를 아프게 회상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읍내 장에 누님을 데리고 나가 병원에 들렀다가 시장에서 목도리를 사서 누님 목에 걸어 주시고는 집에 돌아와 소리 없이 우셨다고. 아마도 그날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당신 혼자 그 기막힌 사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몰래 흐느끼신 것이라고 기억하셨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 가면서 절절하게 아쉬운 것이 바로 아버지의 회초리다. 아버지에게 엄하게 혼나며 회초리를 맞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은 내 추억의 잔고를 가난하게 만든다. 아버지에 대한 비망록이 별로 없는 내게 아버지의 회초리로 혼났던 일이 남아 있다면, 그 사건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그 회초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지상에 남아 있는 나를 이어주는 추억의 소중한 끈이 될 터인데 말이다. 남들은 호사라고 할지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며 아버지와 이별의 간격이 더 멀어지는 지금, 아버지의 회초리 한 대가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하여 나는 한편으로 아빠의 회초리를 회상하며 아빠와 회초리에 얽힌 사연을 나누는 내 딸이 부러운 것이다. 당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차마 회초리 한 대 들지 못한 채 아버지로서 역할을 사임하고 하늘로 은퇴하신 아버지의 입장이야 이해가 되지만, 정작 이 땅에 남아 아버지를 추억해야 하는 아들의 처지에서는 아버지의 회초리 한 대가 백장의 빛바랜 사진보다 백편의 동영상 다큐멘타리보다 더 귀하게 여겨진다.
아이들이 더 나이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할 나이에 이르면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때서야 아빠가 할아버지의 회초리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살아왔는지 살짝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회초리를 한 대라도 맞고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일러둘 것이다.
아무리 부자지간, 모자지간의 정이 깊어도 하늘이 준 명을 다하면 부모와 자식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다. 사랑을 담은 회초리 한 대는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훈육의 잣대가 된다. 또한 그 회초리 한 대의 기억은 그런 효험으로 그치지 않고 많은 세월이 흘러 부모와 사별하고 난 뒤에도 부모를 회상하는 자식에게는 부모를 추억하는 끈이 되어 주는 소중한 유산이 될수 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오늘 문득 명절을 앞둔 길목에서 당신의 회초리 한 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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