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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고영상씨“내가 따지는 성격이 있어……”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 또한 장사여서 근동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은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나무로 만든 물동이를 물지게도 없이 양손에 들고 달려와서 불을 껐다. 또한 기다란 막대기를 맨손으로 땅바닥에 쑤셔 박으면 손잡이만 남을 때까지 들어갔으니 이를 본 사람들은 그 기에 눌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친일파 처단과 일제 고관 암살을 주목적으로 결성된 비밀조직인 광복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전라도를 근거지로 삼아 주로 친일파들의 재산을 털어 만주의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는 일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고자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라북도 일원에서 계속하였고, 그 후 1924년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1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고향인 부안 청호로 돌아왔다. 계속된 감시의 그늘 속에서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가 해방을 보지 못한 채 환갑을 눈앞에 두고 숨을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앞선 내용은 우리지역의 독립운동가인 고제신 애국지사의 이야기이다. 그분의 직계 후손인 고영상씨(79)를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것 좀 말씀해주세요.”
“기억이랄 게 없어요. 내 나이 7살 때 돌아가셨는데 10살 때 해방이 되었으니까요. 어릴 때 기억은 어머니랑 둘이서 농사지으면서 힘들어서 울던 기억밖에 없는 것 같네요. 봄에 논 갈고 나면 흙덩어리를 괭이로 까야 하는데 여덟 마지기 농사가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77년도에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신청을 대대적으로 받았지요.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부안사람 치고 아버지가 독립운동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집에는 아버지의 행적을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고향집에 돌아와서도 주요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 부안의 향토사학자 한 분으로부터 전주교도소에서 아버지의 판결문을 보았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갔지요. 하지만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거기에는 없더라고요……. 그것을 실마리로 결국 부산교도소에 있는 판결문 보관 장소에서 나흘 동안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판결문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야만 했어요. 서류 신청 마감시간에 쫒기며 사흘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 판결문을 하루만 더 찾아보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기적같이 아버지 이름이 있더군요.” 고영상씨는 잠시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셨다.
“판결문에는 강도죄로 8년형을 선고한다고 되어있는데 공범 중에 독립운동의 거물도 있고 하니까 그 강도짓이 친일파 돈을 빼앗아 군자금으로 썼다는 말이 되는 것이죠. 6개월을 온갖 고문을 하며 취조를 해도 끝까지 불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돈을 빼앗은 죄목으로 강도가 된 거예요. 벌교 갑부 서도현의 돈 1만 4천원을 빼앗았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140억은 된다고 그래요.”
기적처럼 찾아낸 판결문과 당시 사건과 재판과정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를 근거로 비로소 항일독립운동의 행적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큰일을 도모한다는 명분하에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많은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영상씨의 경우도 그러하다. 하지만 특유의 꼼꼼함과 몸에 밴 검소함,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강직함 덕에 넘치지는 않지만 결코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3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금전출납부와 일기장이 오늘의 고영상씨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심심하니까 쓰는 거지 뭐!”
애써 별것이 아니라고 말하시지만 돈을 빌려주고도 서류가 없어 되돌려 받지 못하게 된 경우나 여럿이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억울한 경우에도 그 일기장과 금전출납부는 그 사람들을 곤경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본인 말씀대로 “따지는 성격”덕에 자녀들로부터 “그만 하시라”는 잔소리도 듣긴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따지는 성격”이 실력을 발휘하여 아파트 전세대가 부당하게 많이 내오던 전기요금이 정상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잘못된 것이 보이면 외면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져 제대로 고치려는 고영상씨의 일상생활속의 철학이 현 시대에 커져가는 모순덩어리를 풀어 해쳐줄 열쇠처럼 느껴졌다.
아버님에 대한 자료를 설명해주며 입가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가 보기에 참 좋았다.

 

김재성 기자  je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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