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에게 겨울철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더운 여름날을 견디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짱짱해야 하기 때문이다. 틈나는 대로 변산을 오르다가 년 초에 강원도 설악산을 다녀왔다. 설악산은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데 과연 지치지 않고 1박 2일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산을 다니는 동무가 있어 걱정을 뒤로 하고 아직 밤기운이 남아있는 아침 6시경 한계령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싸늘한 공기, 서걱거리는 눈길, 가파른 절벽과 첩첩이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는 동안 처음에 느낀 약간의 공포감이 나중에는 경외감으로 바뀌어 갔다. 높직한 산등성이를 몇 개나 넘었을까, 대청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끝청봉을 넘어 중청 대피소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점심 무렵이었다. 부랴부랴 점심을 지어 먹고 뻑뻑하게 굳어오는 다리를 끌고 대청봉에 올랐다. 사방이 탁 트인 새파란 하늘이 열리고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날씨라고들 한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은 공룡능선을 탔다. 1000~1300m 높이의 뾰족한 바위봉우리를 연이어 넘어가는 험한 코스다. 줄을 잡고 오르는 가파른 경사와 칼끝 같은 정상을 4~5개 지나서야 마등령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행길도 만만치 않았다. 바위로 만들어진 돌계단을 수천 개쯤 밟고서야 천불동 계곡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사방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순간도 공짜가 없었던 설악산 산행이었다. 인생도 대체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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