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사람책(Human Book)이다


모두가 사람책(Human Book)이다

199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한 학생이 동료들의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그의 친구 다섯 명은 “폭력을 멈춰라”라는 단체를 만들고 폭력추방운동을 시작했다. 그 후 그들은 2000년에 새로운 형태의 폭력추방운동을 펼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도서관(Human Library)"이다. 리더 격인 로니에버겔은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차별과 폭력이다. 예를 들면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하면 “이번 승진대상자로 충청도 출신인 아무개는 배제시켜야해.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거든”이라고 말했다면 이것이 차별과 폭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별과 폭력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야 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평소에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나눔, 소통, 공감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근거에 기초한 감정적 태도와 제한된 체험에 기인한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도서관방식을 제안했다. 즉, 도서관에서 책을 독자들이 빌려서 읽듯이 ‘사람책’의 인생이야기를 독자가 대출신청해서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그렇게 시작된 “사람도서관”프로젝트는 전세계로 이어져 이제는 70여 개국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었다.
부안에도 “부안의 사람도서관”을 만들고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 만나 보았다.
전라북도 문화관광해설사로서의 일과 함께 “부안의 사람도서관”일에도 적극적인 박옥희(53)씨에게 물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까?”
“지난해에 군립도서관에서 ‘길 위에 인문학’이라는 인문학 강좌를 세 차례에 걸쳐서 했습니다. 간송 전형필 특별전을 보러 서울도 가고 바다와 제사, 변산마실길과 문화가 주제였는데 참가자들의 호응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그 강좌를 빠지지 않고 나왔던 몇몇 분들이 좋은 기운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사람도서관’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부안의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사람책(휴먼북)으로 등록 되어있나요?”
“아직은 준비 단계라서 약간 다르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달 한차례 회원들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책을 선정하고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8월부터 다섯 차례를 했는데 적게는 15명에서 많게는 45명까지 참석하는 것으로 보아 부안에서도 문화적인 갈증이 많았었음을 느꼈습니다.”
“부안의 사람도서관”은 유연함이 강점으로 보인다. 다른 모임과는 달리 회원이라는 개념이 없다. 참여하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별도의 회비도 없다. 필요하면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강연도 좋고, 좌담도 좋고, 외부의 행사를 빌어서라도 자신들과의 문화코드만 맞으면 거리낌이 없다. 조선일보의 후원을 받은 “책, 세상을 열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세 명의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단, 작가의 선정은 신문사에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철저히 회원들의 의견에 따르는 원칙도 지키며 유연하게 대처한다.
“내년에는 부안에 계시는 사람책을 많이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지장암의 일지스님과 누에타운의 손민우박사님, 변산에 계시는 서정남시인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사람책은 전문 지식을 갖춘 명망가 위주로 선정이 되나요?”
인터뷰내내 귀한 차를 대접해준 부령다원의 금선화(53)씨가 답해주었다.
“아닙니다. 자신의 분야와 위치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들려주고 싶은 사람, 사회적 편견으로 차별과 폭력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가능합니다. 사람도서관의 가장 큰 목적은 평상시에는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한동안 “부자 되세요!”라는 새해 덕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참으로 듣기 거북한 덕담이었다.
할머니는 손자를 나무랄 때 “사람이 그럼 쓰나~”라고 말씀하셨다. 이웃의 딱한 사정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이 부안의 사람도서관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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