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무산됐다.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조항에 일부 종교단체가 극렬히 반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TV중계 화면을 통해 퍼진 그들의 난동은 충격적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인권헌장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동성애 천국을 만들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다.
지난 10일에는 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익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에 한 고등학생이 황산이 섞인 인화물질에 불을 붙여 테러를 가한 것이다. 이를 제지하던 과정에서 두 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 토크콘서트는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던 콘서트로, 범행을 저지른 고등학생은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콘서트여는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알아라”라는 글을 게시했다고 한다.
나는 성소수자도, 종북주의자도 아니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이 사례도 있다. 안산에 있는 한 기업은 채용공고에 본적이 전라도인 사람은 지원불가라는 항목을 적어 넣었다가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다.
근래 들어 혐오와 차별이 노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사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빨갱이, 동성애자, 전라도는 우리나라의 단골 차별코드다. 다만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적어도 그러한 차별이 문제라는 인식은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입 밖으로 내놓는 데는 도덕적 자기검열이 존재했다. 그런데 근래의 현상은 그러한 상식이 다시 무너져 가고 있는 듯 보인다. 무엇이 원인일까? 갈등과 대립을 제 잇속에 이용하는 정치권? 종북몰이와 북한타령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언론? 근본주의적 종교관만 고집하는 일부 종교계?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을 부추기는 인터넷? 어디 하나에만 책임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인은 이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에게 더 쉽게 휘둘리게 된 대중의 정서다.
근래에 읽은 <모멸감>이란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핍과 공허를 채우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취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인에 대한 모멸이다. 누군가를 모욕하고 경멸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김찬호, 문학과지성사)
내 스스로부터 돌아보자면 나 역시 누군가에 대한 경멸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상이 소수자들이 아닐 뿐이다.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했다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정서가 널리 퍼져있다. 때문에 때로는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는 맹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비슷한 정서가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생활인들이라면 모두가 원인을 단순히 규정하기 힘든 분노를 품고 살고 있다. 갑에게 굴종해야만 하는 현실, 내일을 꿈꿀 수 없는 불안감,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안전망, 언제까지고 반복되는 무한경쟁의 일상. 여기에서 오는 결핍과 공허가 분노가 되어 그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사에게, 갑에게, 기득권에게 향하지 못하는 분노가 나와 관계없는 소수자와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를 향해 폭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 생각하니 갈수록 노골적이 되어가는 차별과 혐오의 굿판이, 더는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아우성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사건에 대한 비판을 넘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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