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훼리호 참사 11주년 위령제 맞아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경, 36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격포항을 향하던 서해 훼리호는 불과 4km 항해하고 침몰했다. 탑승객 362명중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 사건.

그날로부터 꼭 열 한해가 흘러, 서해 훼리호 참사 11주년 위령제는 유족 40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진행되었다.

신명(48) 위령탑 보존 위원장은 “사람이 별로 안 온 것은 먹고 살기 힘드니 그렇지. 그리고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많은 분들이 그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래도 잠깐 들렀다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라며 말을 흐렸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니...그래도 작년에는 10주년이라고 떠들썩 했는데.” 올해 위령제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한 노인의 독백 너머로 위령탑이 보인다.

연꽃 모양으로 인체들이 뒤엉킨 모습, 하나 하나 선명하게 새겨진 292명의 이름들은 변치 않았지만, 에메랄드 빛 바다가 감싸는 위도는 많이 변했다.

신아무개(54)씨는 “그날 참사는 인재에 의한 사고였고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때, 위도 종합개발사업이 신속히 진행되어 해안도로, 상수도, 항만시설 등이 건설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들의 넋 위에 지금의 아름다운 위도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아무개(68)씨가 내보이는 위도는 또 다른 풍경이다. “위도는 핵폐기장 문제로 주민들 사이에 골만 패어 서로들 조심하고 있어. 뭍에서는 몸으로 부딪히며 싸우는데 위도는 마음끼리 싸우지...”

“그대는 아는가, 저 바다 우는 소리를. 파도를 헤치고 들려오는 슬픔과 절망의 통곡소리는 아직도 우리 곁에 전율과 회한의 눈물을 마르지 않게 하고 있다...”는 위령탑의 글귀는 거짓인 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잊혀 진다는 그의 말에 의하면.

김일호 기자 ihki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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