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입니다. 나치의 독가스실과 일제의 생체실험실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수백만 생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다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담아 유엔이 선포한 게 세계인권선언입니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샤요 궁 앞 뜰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한 후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곳이 샤요궁이었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극복하고자 만든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기에는 적합한 상징성을 갖춘 장소였습니다. 유엔총회가 열린 샤요 궁의 대칭형 건물 사이의 공간은 ‘인권의 앞뜰’로 불리며, 바닥에는 세계인권선언 1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58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총회에서 선언 채택에 반대한 나라는 없었고, 2개국이 불참했으며, 48개국이 찬성, 8개국이 기권하였습니다. 소련 등은 인권선언이 자유주의 이념을 너무 강하게 반영하고 경제적 권리 등이 너무 적게 들었다는 이유로 기권을 통해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흑백분리, 백인우월 정책을 펴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해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인권선언을 찬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남녀평등 등 서구적 가치를 너무 강조하고 이슬람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기권을 선택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1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습니다)
현재에 보면 여러 단점과 한계도 있어 보이지만 당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국제적 합의를 담은 문서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서구 강대국과 비서구 개도국이 함께 참여해 작성한 최초의 공동문서이며, ‘보편적’으로 선포한 역사상 최초의 인권선언입니다.

“우리가 인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지닌 타고난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남과 똑같은 권리 그리고 빼앗길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로 시작되는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소수자, 약자 등은 이 선언을 근거로 보편적 인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권의 이름으로 식민지로부터의 독립, 인종차별 철폐, 여성의 투표권 보장 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네 가지 자유, 즉 “모든 사람이 말할 자유, 신앙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으며, 인간이 폭정과 탄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 무장봉기에 의지하지 않게 하려면 법에 의해 인권을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며 저항권과 법에 의한 지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1조와 2조는 인간의 평등과 차별 금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또는 그밖의 견해에 따른 그 어떤 종류의 구분도 없이,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모든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2조에서 차별금지 사유로 12가지를 들고 있으나 ‘어떤 종류의 구분도 없이’라는 표현처럼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차별 등에 대해서도 차별금지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장애인, 성적 지향, 학력과 학벌, 결혼 여부, 나이’ 등등의 새로운 차별 사유를 찾아내고 있으며,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앞의 차별 사유에다가 ‘출신 지역, 병력’ 등을 포함하여 19가지의 차별 사유를 들고 있습니다.

인권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타날 때마다 인류는 저항해 왔으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향유해야 할 권리가 있으면 새롭게 찾아내 국가 등 인권의 책무자들에게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인권은 확장되어 왔습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장애인’의 권리가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도 같은 인간임을 선언하고, 공동체가 장애인도 다른 이들이 누리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투쟁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인권 논의가 발전했습니다.
‘접근권’이라는 인권 개념을 장애인에게도 적용하면 이동권이 됩니다. 접근권을 교육에 적용하면 교육받을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할 권리가 되고, 행정 영역에 적용하면 정보공개청구권이나 행정과정에의 참여할 권리가 될 것입니다. ‘장애’는 결국 사회적 장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휠체어 장애인이 집에서부터 직장이든 식당이든 어디든지 이동하는데 장애가 없다면 ‘장애인’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식당이 있지만 계단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면 휠체어 장애인의 장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에게서 시작된 이러한 이동권 보장은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로 발전하여 어르신, 임신부 등의 이동권 보장에 이르렀습니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 육교를 철거하면서 사람들은 도로가, 거리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하고,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보행권이라는 보편적 인권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인권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책무로 삼아야 하지만, 그러한 인권이 결국 모든 사람에게도 보장되어 향유되는 보편적 인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66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있으면 주고 없으면 그냥 마는 시혜적 복지행정에서 벗어나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므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여 보장하는 인권행정으로 나아갈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