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양반은 평생을 쪼잔하리만치 아끼는 생활로 일관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거치면서 오로지 절약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생각이 굳은살처럼 박혔던 것이다. 본인은 물론 구암댁과 자식들의 옷도 10년에 한 번이나 살까말까였다. 제실에 딸린 전답을 일구며 비료 한 포대, 농약 한 병 허투루 쓰지 않았다. 남은 비료는 끈으로 꽁꽁 묶어 두었다 다음 농사에 썼다. 논두렁은 포도시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나락 한폭이라도 더 꽂을 심산에 해년마다 삽으로 깔짝 깔짝 파먹은 결과다. 가끔 방천이 나기도 했으나 구암양반의 논두렁은 넓어지지 않았다. 유일한 교통 수단은 자전거였다. 해질녘 술박스를 자전거에 싣고 헉헉거리며 고개를 넘어오는 구암양반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1년에 한 번이면 많은 거였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털어 깨끗이 비우고서야 다음 술병을 꺼내 놓았다. 잔은 반드시 소주잔을 이용했다. 큰 잔은 왠지 낭비가 심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가끔 너무 짜게 굴지 말라는 구암댁의 지청구가 울바자를 넘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짜게 산다고 큰 부자되는 것도 아니고 싸짊어지고 무덤까지 갈 것도 아닌데 괴기라도 한근 사다 먹자는 뭐 그런 얘기였다. 가끔 머리를 탁탁 쳐야 제대로 나오는 테레비에서 저녁뉴스가 시끄럽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자원외교가 말짱 헛짓거리였다는 얘기가 오늘의 뉴스다. ‘72조원의 돈이 날아가 버렸다네요. 정유회사 잘못사서 2조원, 셰일가스로 1조원, 구리광산에 2조원, 호주LNG 사업에 8천억원 석탄 광산에서 293억원을 날렸고요, 광물자원공사가 아프리카에서 176억원을 날렸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밥숟가락을 들고 점점 입이 벌어지던 구암양반 “망할 놈의 자식덜, 지 살림 아니라고 개판을 벌여 놨구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입맛을 완전히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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