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를 통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내가 기쁘다

연이어 며칠 된서리가 내리더니 빠르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맞춰 “자연과 교감하는 가을국화전시회”란 주제로 부안교육청직원들로 구성된 국화동아리 “국화분재사랑”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국화향기 가득한 부안교육지원청을 찾았다. 교육지원청 입구에서부터 현관과 계단, 복도는 봄부터 준비해서 이제 막 꽃을 피워낸 국화작품들로 가득했다. 나비, 우산, 별, 탑 모양의 각종 형상을 국화로 장식한 형상작, 나무와 돌 위에 고목이 자라는 듯 한 모습의 목부작 석부작 분재, 커다란 꽃을 세워서 만든 대국등 약 200여점이 넘는 국화작품들이 내품는 국화 향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최상준씨(58)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번 전시를 거의 혼자 준비하다시피 했다고 들었습니다”
“몇몇을 제외하고 전시된 200여점의 국화 중 대부분이 제 손을 거쳐 간 녀석들입니다”
“동아리 작품전이라기보다는 개인전이군요…….”
“하! 하!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네요. 국화를 만지는 일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보니 동아리회원들도 같이 해줘야하는데 직장일 하면서 시간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번 전시를 주도적으로 이끈 최상준씨는 부안교육지원청에서 시설관리을 담당하고 있다. 최씨는 이곳에서 10년째 봄에는 야생화전시회를, 가을에는 국화전시회를 열고 있어 보는 이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최씨가 국화와 야생화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숙명인 듯하다. 지금은 부안댐 건설로 길이 막혀버린 내변산 청림새재에서 태어난 최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각종 풀과 나무에 대해서, 특히 그 쓰임새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마치 모태신앙처럼……. 산중에서 살다가 중학교는 삼남중학교로 소위말해 유학을 나왔으나 열악한 하숙환경에서 연탄가스를 세 번이나 마셨다. 죽지 않고 겨우 졸업을 한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첫 근무지인 마포초등학교에서 학교시설물관리와 교재교구의 수리를 하며 교육청에 들어왔다. 그의 꽃과 나무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학교와 그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로 이어졌고 학생들과 선생님, 주민들까지 모두가 그 꽃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에 그는 매우 행복했고 더욱 노력정진하게 된다.
부안제일고(당시 부안농고)에서 5년간 근무할 때 그는 온실 속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봄에는 페추니아, 팬지, 메리골드, 샐비어(사루비아)같은 꽃을 길러 부안군 전역의 학교와 관공서, 교회 같은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가을에는 국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국화재배 실력도 여타 시군의 화훼반이 있는 농고와 견주어 월등한 실력이어서 전라북도 교육청 경진대회에서 큰 상을 받고 앞서 말한 선행까지 알려져 2003년에는 국무총리로부터 우수공무원으로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당시 온실 속에서만 살던 흔적은 손등과 얼굴에 자외선으로부터 생긴 검은 반점으로 훈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퇴직을 3년 앞둔 최상준씨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웃음을 잃지 않고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는 생활신조를 가지고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신념이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최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틈틈이 써서 모아둔 시 수십 편을 아들이 프린트해서 엮어 주었다며 두툼한 인쇄물을 건넨다. 시 안에서도 그는 자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방송국PD로 있다는 외아들 대우씨에게 퇴직 후 회갑선물로 진짜 시집으로 출판해달라고 하세요”
“어떻게 제 입으로 그런 걸 바란다고 말하겠어요. 저야 그냥 느낌이 올 때 잘 써서 그 느낌 그대로 남겨놓으면 되는 거지요”
“여기에 오니 눈과 코가 호강하네요. 전시는 언제까지 하나요?”
“꽃이 시들 때까지 하지요. 기간이야 뭐 중요한가요?”
수줍은 듯 한 미소를 지으며 국화꽃 속에 서있는 그가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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