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는 성적표다. 일 년 동안 지은 농사를 평가 받는 자리다. 시험 성적표를 받는 학생처럼 추수 때가 되면 다소 긴장되고 두근두근하기도 한다. 콤바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0년도이다. 이 콤바인은 일본에서 1967년에 개발된 것으로 10년 뒤인 1977년도에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1992년도에는 한 번에 두골을 베는 2조식 콤바인이 있었다. 하루 작업량이 3000평정도 되었는데 9월 말에 시작하면 11월 말까지 밤을 새워가며 나락을 베었다. 이후 콤바인은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은 한번에 6골을 베고, 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신형 콤바인이 보급되어 하루에 1만평 이상의 작업을 너끈히 해 낸다. 수확 시기도 20일 정도면 끝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추수기에 마음이 바빠지고 다소 긴장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논두렁을 왜 깎아야 하는지, 논에 골을 내서 물 빠짐을 좋게 하고 논을 잘 말려야 하는 이유를 벼를 베면서 배웠다. 거름을 알맞게 주어 벼가 쓰러지지 않으면서 수확량이 많이 나오도록 잘 조절해야 하는 이유도 수확하면서 깨닫는다. 하지만 이때의 깨달음은 이미 때가 늦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학생이 시험 성적이 잘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일인 것처럼, 1년 동안 열심히 땀을 흘리지 않고 많은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농부의 마음이 아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내년 농사를 준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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