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옛사람이 아니라 동시대인이다. 노인 아닌 사람이 오늘을 처음 맞듯이 노인도 처음으로 오늘을 맞는다. 비록 노인이 많은 나이를 가졌지만, 그는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동시대의 인물이다. 갓 태어난 애기랑, 갓 결혼한 새신부랑, 이제 갓 여든 생일을 맞이한 노인은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노인은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사람인가? 통계의 관점에서만 그렇다. 그런데 이런 통계는 노인에 대한 통계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직접 노인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지금 어떤 노인을 만나고 있다면 당신과 그 노인 중에 누가 먼저 사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질문도 있다. 노인은 곧 죽을 사람인가? 그것도 통계의 관점에서만 그렇다. 바로 앞에 있는 노인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구,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간디?”라고 말하는 노인들이 많다. 본인도 자신이 얼마나 살지, 자신이 곧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노인은 낡은 사람인가? 인간을 생산하는 기계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청장년의 어떤 정점을 지나서 낡아가는 기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기계인가? 그것은 아니지 않나? 인간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노인을 낡은 사람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인격의 관점에서 보면 동등한 인간이다. 도리어 수많은 경험을 가진 완숙할 가능성이 큰 인격이다.
노인은 병든 사람인가? 늙음와 병은 전혀 다른 것이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생명의 과정이며, 병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몸의 균형이 깨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늙으면 죽는 것이지, 늙으면 반드시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병들어 죽을 수도 있다. 병이 들었는데 그 신체가 늙기까지 했다면 그 병에서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늙는다는 것을 병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늙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다.
노인은 약자인가? 신체적으로 보면 젊은이보다야 힘이 없겠지.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신체적인 힘으로 견주는 사회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노인은 사회적으로 약자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노인은 사회적으로 약자다.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너무 적고, 개인이 경제적인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인은 무조건 약자라는 것과는 거리를 둘 문제다. 왜냐하면 일부 국가에서는 노인이 강자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하지 않고 생활을 즐기면서 풍요로운 여생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조건 노인이 약자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약자일 뿐이다.
어떤 할머니는 염색약 때문에 피부에 문제가 발생하는 데도 굳이 기회가 될 때마다 염색을 하려고 한다. “아니 왜 그렇게 염색을 하려고 하세요? 늙으셨으면 늙으신 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흰머리로 사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런데, 아직은 아니란다. 뭐가 아닐까? 아직은 노인이 아니란다. 나이 80이신 분이 노인이 아니면 누가 노인인가? 그런데도 한사코 노인이 아니라는 노인, 이렇게 스스로 노인임을 부정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노인을 병들고 약하고 낡고 옛사람이고 이제 곧 죽어 없어질 그런 존재로 여긴다면 누가 노인이 되고 싶을까? 죽어도(!) 노인은 되고 싶지 않을 것같다.
반면에 노인 스스로 병들고 약하고 낡고 옛사람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사는 게 절박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애들에게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무료로 식사를 주겠다고 해서 애들 자존심을 상처낸 적이 있는데, 동일한 일이 노인에게도 일어난다. 이건 노인들이 노인임을 부정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정상적인 노인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 노인이라는 세대가 마치 직업에서 회피업종이 생기듯이 회피세대가 되어 버렸다. 지금 이 나라에서 누구도 초고령 사회를 미리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지금 젊은이와 노인 모두 초행길로서 초고령 사회를 맞는다. 노인은 넘쳐나는데, 노인 아닌 사람이 노인에 대하여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거나, 노인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노인의 역할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우리 모두는 문제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할 것이다. 허울뿐인 노인 공경은 제쳐두고, 노인을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노인을 동시대인이자, 현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동지로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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