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설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구한말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와 외교관들은 테니스로 여가를 즐겼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컨대 당시에도 서양에서의 테니스는 꽤나 인기 있는 운동이었나 보다.  공을 쫒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을 처음 접한 관료들은 “무엇 때문에 땀 흘리며 저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인들 시키지 않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우리나라 테니스의 역사는 1900년대 일본을 통해서 개량된 연식정구의 형태로 시작되었고 2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테니스가 도입되었다.
현대테니스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여자프로스포츠선수들의 수입 상위10안에 7명의 선수가 프로 테니스선수들임이 이를 증명하는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장기간의 침체기에 들어 있어 프랑스오픈 우승자 중국의 여자테니스 스타 리나 웨이보(29)나 US오픈 준우승의 일본의 신성 니시코리 게이(24)가 부러울 뿐이다. 이들은 “체구가 작은 아시아인은 안 된다”는 통설이 틀린 말임을 증명하고 있는 아시아의 테니스 스타들이다.
지난 달 부안 스포츠파크내에 위치한 테니스코트가 긴 준비기간을 거쳐 정비를 마치고 새롭게 개장했다. 8면의 테니스 코트에 조명시설을 추가하고 인조잔디를 깔아 관리의 편의성을 높였다. 새롭게 단장한 테니스코트 덕분인지 TV예능프로그램 덕분인지 신규 회원들이 계속해서 가입하고 있다는 부안 공설테니스 클럽(회장 김호중 49)을 찾아가 보았다.
조명탑이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코트에는 며칠 후에 열릴 부안군수배 오픈 테니스대회를 준비하는 많은 회원들이 복식경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에서는 레슨코치의 지도로 쉴 새 없이 힘찬 스윙과 함께 공을 넘기고 있었다.
부안 공설테니스클럽은 부안 스포츠파크 개장과 함께 태어났으며 창립 때부터 클럽회장으로 지금은 클럽 고문으로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전임 회장들의 노고가 없었으면 지금의 클럽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김호중회장은 그분들께 감사함을 전했다. 
“현재 32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연령과 직업도 다양하고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의 직장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클럽에서 어떤 행사를 해도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일을 참 쉽게 풀어갑니다” 
회원들이 쉽게 증가하지 않았던 이유로는 여타 시군에 비해 시설이 열악한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시설 개보수전에는 한 번 비가 오면 물 빠짐이 나빠 다시 운동하려면 비가 그친 후에도 며칠을 기다려야했다. 지금은 그럴 걱정이 없어 행복하단다. 다만 화장실이나 선수대기실 같은 주변 편의시설은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아가야할 부분이라고 했다.
“테니스엘보우라는 병이 있죠? 테니스를 치면 정말로 팔꿈치가 많이 아픈가요?”
“테니스를 치다가 흔히 당하는 부상이 팔꿈치인데요……. 사실은 잘못된 자세나 습관 그리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다가 다치는 것이죠. 팔꿈치인대는 한 번 다치면 수개월씩 가기 때문에 부상방지가 제일 중요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상을 방지하는 좋은 폼을 가져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레슨을 꾸준히 받는 것입니다”
부안 공설테니스클럽은 매월 월례대회와 동호인 리그, 그리고 지자체별로 개최하는 각종 대회에 참여하고 여름에는 가족동반 합동수련회를 떠난다. 합동수련회는 여행의 비중이 더 크다. 하지만 테니스인들은 라켓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현지에서도 한 게임씩은 꼭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숙면을 취할 수 없다고 한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스포츠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김 용대 선수가 올림픽에서 멋진 스매시를 성공한 후 날린 윙크 세리머니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배드민턴동호인의 저변확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탄탄한 저변과 인기에 비례하는 지원의 힘으로 김용대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탄생할 여건이 마련되는 선순환의 구조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나라 테니스에서도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길 희망해본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