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안독립신문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좌담을 하고 있는 참석자들
사회바쁘신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각 부문별로 지난 10년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김진원 회장님이 먼저 시작해 주실까요?

   
▲ 김진원 우리밀영농조합법인 회장
김진원지금 부안 농업을 보려면 부안만 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요, 전체적인 농정이 어떻게 흘러 왔는가, 이 부분부터 먼저 살펴봐야 된다고 봅니다. 전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때 첫 번째는 녹색혁명의 종말입니다. 1940년대 전인류의 기아를 극복하겠다고 시작된 녹색혁명은 다수확 품종들을 개발하게 되지만, 반대로 농약을 사용해야 하고 비료를 사용해야 하고 또 농기계를 사용하고 관계수리시설을 동원해야 합니다. 60년대까지는 그래도 이러한 방식이 매년 10% 이상 성장을 해요. 대단히 큰 거죠. 지금에 있어서는 한계에 도달해서 거의 정체상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화석에너지의 고갈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농업뿐 만 아니라 각 부분에 있어서 다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죠. 그나마 이제 피크점을 넘어서 고갈돼 가고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세계화의 굴레인데 특히 농업에 있어서는 생산비가 낮은 쪽으로, 다시 말해 농산물가격이 가장 싼 쪽으로 수렴이 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생산비가 많이 드는 곳에서는 농업을 포기하게 되죠. 지금 말씀 드린 세 가지는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자본의 논리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우선 규모화하고 그 다음에 산업영농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규모화해서 우리농업이 나아졌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못해요. 지금 하위 20% 하고 상위 20%의 농가소득 차이를 보면 거의 한 12배 정도가 나고 있어요. 이게 도시 같은 경우에는 5배 정도 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제 도시근로자하고 농가소득 차이도 보면 점차 벌어져서 거의 60%에 달해요. 농촌이 가면 갈수록 열악해진다는 거죠. 지금 부안에서도 5/5프로젝트 하고 있지 않습니까? 5천만원 소득 농가를 5천개 만든다는 건 다시 생각해보면 상위 20%를 자꾸 늘리겠다는 거죠. 이번에 김종규 군수의 공약을 보면 더 나가서 1억 소득농가를 300가구를 만든다는 공약이 있더만요. 강소농도 500호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지금 전체적인 우리 농가들이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농정은 다시 또 상위 20%를 육성하겠다는 거죠. 그 공약이 달성이 돼서 부안의 농민들이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따로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전세계적인 흐름인 소농을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 이춘섭 부안종합복지관장
이춘섭1997년 IMF 터지고 나서 화이트칼라라고 하는 사람이 대거 길거리로 나오면서 노숙이나 이런 상태가 되니까 그때 DJ정부가 사회안전망이라는 문제에 눈을 뜬 건데요, 강건했던 화이트칼라도 쫓겨나고 외국자본도 들어오고 농정도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그때부터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 사회안전망문제, 수급권자 같은 최소한의 생계급여 문제나 복지문제 같은 것들이 얘기되기 시작했죠. 아무튼 우리사회의 빈부격차나 양극화가 굉장히 심화되고 도농 간에 격차도 심해지고 노동현장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화 되고 또 자영업자들도 양산되고 하면서 복지적 필요성에 의해 외형적으로 복지기관이나 서비스전달체계는 많이 됐지만, 역으로 말하면 점점 생활자체가 불안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남정수우리 시장뿐 아니라 부안 경제는 IMF 터져 가지고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어도 그래도 그렇게 피부에 와 닿는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어요. 문제는 핵폐기장 문제가 마무리될 즈음에 맞춰가지고 새만금도 딱 막아졌단 말이예요. 그때부터 사실 부안의 실질적인 불황이 시작됐던 건데, 이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핵폐기장 때문에 불황이 시작돼 가지고 지금까지 가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고 내가 판단했을 때는 기본적으로 맨손어업을 했던 사람이 바다에서 매일 나오는 수입이 없어져버리고 그분들의 수입을 가지고 소비활동을 부안읍내에서 해야 하는데 그분들이 일이 없어지니까 오히려 장사를 하러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그나마도 있는 손님 쪼개 먹지, 사러 오는 사람은 적어지지, 그러니까 불황이 시작됐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80년대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2010년에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80년대부터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안 놓고 그때 마인드를 가지고 2010년대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군수나 그런 분들하고 더 밀접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지금 그런 현상이 부안에서도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그런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사회황창호 위원장님은 사실 노조위원장이기 때문에 노동 쪽일 수도 있고 행정 쪽일 수도 있는데, 제가 굳이 행정 쪽 말씀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린 건 일반 공무원이 오시면 행정에 친화적인 말씀만 하신단 말이예요. 그래서 행정을 객관적으로 보고 비판적인 말씀도 하실 수 있는 분이 위원장님이겠다 싶어서 모셨습니다. 우리행정의 문제점이랄까, 일단 짚어주십시오.
   
▲ 황창호 전국공무원노조부안지부장
황창호핵폐기장사태 이후로 부안사회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조직도 양분화 돼 가지고 엄청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구요. 표면적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그래도 아픈 게 지금도 있습니다. 저희 조직은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까 이제 묻어버리고 하나가 되서 앞으로 부안군 발전을 위해서 같이 일해야 한다, 힘써야한다, 그런 사고는 똑같고요, 그래서 앞으로 군민들이 합심해서 어려운 난국을 힘을 모아서 같이 나가면 좋은 우리 부안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정답을 말씀하셨어요. 지난 10년 동안 행정에 변화는 없었습니까. 발전이든 퇴보든.
황창호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저희 공무원들도 예전에 그런 사고는 아닙니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죄인이다 싶을 정도로 몸을 낮추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계화면을 갔는데 이런 경우를 당했어요. 고등학생 중학생 딸 둘을 둔 여자계장인데, 민원계장인데 민원인이 술을 몽땅 먹고 왔더라고요. 거기서 그 여자계장한테 쌍욕을 해요. 정말 치밀어 오르는데 같이 싸울 수도 없고 그냥 말렸습니다. 여자계장도 그냥 싫은 소리 안하고 달래가지고 나중에 사과 받고 그런 실정이예요. 참 어렵습니다.
   
▲ 임덕규 여성농업인센터장
임덕규제가 부안에서 산지가 24년 째예요. 도시에서 살다가 내려와 보니 여성분들의 생활이 도시와는 너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다른 분들한테 제 친구들이나 도시에 사는 분들에게 이 지역은 도시보다 30년이 뒤쳐져 있다, 그렇게 말을 해요. 91년도에 왔을 때 우루과이라운드라든가 WTO라던가 농업개방이라든가 이런 걸 쭉 거치면서 계속 농촌이 열악해지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 논농사 열필지 자작을 하면 이양기 콤바인까지 모든 농기계를 구비하고 내 농사만 지으면 정말 윤택하게 사셨거든요. 그런데 쌀시장 개방 되고 쌀값 떨어지고 수매제도 없어지고 이런 과정을 쭉 거치면서 지금 농업소득이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그중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여성농민분들이예요 .예전에는 농업노동과 가사노동과 아이들을 양육하고 나아가 농한기 때 취업을 하세요. 참 위대한 분들이예요. 저로서는 굉장히 속상하기도 많이 했고, 그래서 뭐 술 먹고 행패도 많이 부렸고, 부안에는 아직도 저를 무서워하는 남자분들이 많이 있죠. 술 먹다가 남자분들한테 행패를 부려가지고.
사회상도 몇 번 엎었다구요.
임덕규상은 한번 밖에 안 엎었어요. 암튼 여성농민분들 한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 고령화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요. 20년 전에 비해서 지금 농사일 하시는 분들 연세도 굉장히 많아졌고 저희 면단위 있는 학교에 아이들 숫자를 보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어요. 또 한 가지 제가 놀랬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꿈이 없는 거였어요. 한 15년 전 그때 처음으로 공부방을 시작을 했었는데 아이들 주변에 롤모델이 없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과제예요.
   
▲ 고이석 줄포자동차공업고 교사
고이석우선 우리 전교조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핵폐기장 때 점점 조직원수는 감소하고 그리고 또 영향력도 숫자가 감소하는 것만큼 떨어지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사실은 전보다 훨씬 약화되고, 학생들의 학습환경도 나아진 게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늘 바쁘고 힘들고. 그럼 전교조 한 일이 뭐냐, 그런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시기였던 거 같아요. 어쨌든 김승환 교육감이 되면서 학교에는 사실 변화가 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불만족스러운 게 있지만 선생님들끼리 소통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수업개선 모임 같은 여러 모임이 생겼고요, 또 수업이라는 게 공적인 행위라면 보고 싶을 때 수업방해 하지 않고 보고 싶다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일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아까 임덕규 센터장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인구감소도 굉장히 심각합니다. 제가 지금 현재 부안군에서 근무를 9년을 했는데 전 애들한테 우리 농업이 희망이 있다고 늘 말한 사람이었어요. 농업이라는 게 심성이라든지 사람을 기른다, 정말로 사람을 만들고 또 네 자식이 좋은 사람 되면 좋지 않냐, 이런 얘기 많이 했어요. 무엇보다 부안에 교육이 살아야 하는데, 제가 2000년도에 부안에 왔을 때는 부안중 삼남중 우수한 아이들이 대부분 전주로만 갔습니다. 그런데 작년 신입생들 같은 경우에는 거의 우수학생들이 부안관내로 왔어요. 이게 뭘 의미하냐면, 부안중 삼남중 1등 아이들이 전주로 가면 이 아이들을 추종하는 아이들이 따라갑니다. 남은 아이들은 이제 2류란 생각이 들어요. 학교도 미달이 되고 걷잡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히 인문고가 살아야 된다, 인문고가 지역사회에서 분명히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현재 고등학교 총 정원이 몇 명이냐면 고 1이 68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 420명이고 초등학교 3학년은 335명입니다. 한 5~6년 지나면 학생가 절반 정도 주는 거죠.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점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각 분야별로 지난 10년을 돌아봤는데요. 이제부터는 부안에만 국한시켜 이런 방향의 움직임이나 이런 운동이 필요하다든지, 어쨌든 우리 부안만의 돌파구를 찾아봤으면 하는데요.
김진원지금 도시에서는 실업문제가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하죠. 그래서 어머니의 품인 고향으로서 다시 와서 정착을 할 수 있는 완충제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런 것 때문에라도 우리지역에 있어서는 소농을 육성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이에 대한 지원책으로 1억 농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투자되는 재원을 소농을 어떻게 육성을 할 것인가, 이런 쪽으로 재원을 옮겨야 된다는 겁니다. 또 학교급식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그 차액을 지원을 하는 것도 있는데, 예를 급식 혜택을 받고 있는 소비자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소농을 육성을 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현재 농업은 자연순환적인 농법을 되살리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바로 소농이 그러한 것들을 실천하기에 적합한 규모이기도 하고요.
이춘섭요즘 들어 부안에도 사회 서비스계통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어요. 학교도 정규교사 외에 돌보미 서비스나 이런 게 많이 생겼고, 또 농사지으려고 내려왔는데 남자는 농사지어도 부인은 농사가 너무 힘든 거야. 그럴 때 그 사람이 보육사자격증이 있거나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래서 여러 가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많이 들어와 가지고 비정규직이지만 일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 농촌지역에도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고이석저도 그 말씀 굉장히 좋게 생각하는데요. 농사를 짓는 정도 되면 방과후 교사로 들어와야 하지 않느냐, 어떤 방과후를 하냐면 우리 학생들이 1년 동안 밭에 심을 수 있는 두세 개 작물을 가르치는 거죠. 아이들한테는 농사가 아니라 생물에 대한 교육도 되고. 그래서 약간의 봉사와 수익이 창출 된다면 전 그것도 충분히 새로운 일이라고 봐요. 그래서 가족중심의 소농, 자연순환적인 농법의 가능성, 이것이 바로 학교에 연결 되는구나, 그래서 적당한 자격을 가진 분들이 방과후 교사로 들어와서 특기를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남정수 부안상설시장 상인회장
남정수우리 시장도 일주일에 한번이든 토요일이든 장날이든 시장 중앙통에 좌판을 깔고 부안군민이 직접 농사를 지은 농산물이나 자기가 잡은 수산물을 깔아놓고 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직거래 장터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자리 잡기 전까지는 차비도 못 벌고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좀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2~3만원만 지원해줘라, 군청에 그런 얘기도 했고요. 우리 사업단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들한테 차비 정도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 그렇게 얘기해놨습니다.
김진원소농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열악한 상태, 이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요즘은 기계화 되고 뭐 되고 해가지고 옛날에 두마지기를 했다면 지금은 기계 가지고 두 내외가 할 수 있는 몇 필지 규모가 사실은 소농이거든요. 그런 개념에서 보셔야 할 것 같고,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소농이 열악하고 경쟁에 있어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대안이 협동조합이죠. 썬키스트 같은 경우도 사실은 미국 오렌지 생산농가들이 초기에 상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횡포에 시달리다가 자기네들끼리 단결을 해서 협동조합으로 출발을 해서 지금도 협동조합이고 그런 것이죠. 바로 그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해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마을에서 마을기업이라든가 이렇게 조직들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 나가서는 향후 10년 이러다 보면은 우리 지역을 이끌어나갈 인력이 필요한데, 사실은 우리 교육은 도시에 나가서 일할 사람들을 키우고 있지 실제적으로 부안에 남아서 같이 농사도 짓고 복지일도 하고 이런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을 하구요.
이춘섭지금 말씀하신 대로 아이들한테 롤모델이 있냐, 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뭐냐? 또 지역에선 사람들 구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요양보호사 사회서비스를 하는 쪽에 사람들은 실제 부안에 살게 될 때 급여도 낮고 하니까 이 지역 사람들이 직접 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란 말이예요. 그러면 앞으로 갈수록 사회성이 굉장히 넓어지는데 그럴 때 여기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성장할 때 살아갈 수 있는 모델을 자꾸 보여줘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2006년에 면접 볼 때 사회복지관에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 출신들 고등학교 교직도 특수교육도 많이 있어요. 기왕이면 지역에 인센티브를 주고 이 친구들이 더 일찍 그런 쪽에 사명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더 좋은 일꾼으로 자랄 수 있거든요. 앞으로 10년 사람을 키우는 그런 부분 뿐 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살 수 있는 직업 모델이거나 도시보다 더 낫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자꾸 개발하고 희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고이석 지금 아이들은 병원에서 나서 아파트라는 데서 자란 아이들입니다. 얘들은 비질을 할 줄 모르고 논에 한번 들어가 보질 않았고 진달래꽃과 무궁화꽃을 구별할 줄 모르고, 아 정말입니다. 이 아이들한테 선택과목으로 컴퓨터 말고 농업이 하나 들어가야 합니다.
임덕규전국에 센터가 40개가 있는데 대부분 상담 교육을 많이 하세요. 그러니까 센터에서 일방적으로 상담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교육을 받아서 스스로 남들하고 상담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상담사를 길러내는 거죠. 그래서 우리 지역이 계속 살고 싶고 돌아오고 싶은 그런 지역이 되기 위해서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역할들이 필요하고,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이 지역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그런 역할들을 맡아야 하겠죠.
고이석일자리창출 면에서 필요한 것인데 먼저 학부모교육이 필요하다,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정말 필요하다, 옛날에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애기 낳는 거 키우는 거 쭉 봐왔잖아요. 할머니들이 같이 사니까 자연스럽게 가르쳐 줬는데 지금은 아예 없이 살거든요. 그것도 일자리잖아요. 교육을 시키는 일자리.
이춘섭제도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지역사회로 가는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이미 부안에도 복지 쪽이나 특수교육 쪽에는 많이 들어와 있어요. 애들이 공부를 전주나 광주에서 하고 돌아왔는데, 하는 얘기가 면단위 어려운 사람들 찾아가서 일을 하다 보니까 부안에서 나서 20년을 살았는데도 부안을 모르겠다는 거야. 아주 지역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요.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다 보니까 더 그래. 그래서 기본적으로 부안이 앞으로 살 수 있고 살아가는 어떤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그 다음에 공교육 기관에서도 그런 경험이나 지역에 대한 지원을 하면 그 사람들이 대학을 갔다가 다시 올 확률이 높다는 말이죠.
김진원제가 미래인력을 어떻게 확보를 할 것이냐, 문제제기를 했는데 사실 지역민들도 자녀에게 학교 졸업하고 부안에 있을 것이 아니라 서울에 가서 뭐를 해야 한다는, 저부터도 그렇고, 다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단 말이예요. 미래의 시간을 지역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는 서울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일부러라도 없는 예산이지만 투자를 해서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거죠.
고이석이건 매우 현실적인 얘긴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120만 원짜리 일자리를 소개한다, 이것은 애들 수준에는 곤란합니다. 이미 산전수전 겪어본 사람에게나 가능한 얘기고요, 결국 이걸 하려면 남편의 수입과 여성의 소득을 종합적으로 합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고 그리고 문화활동도 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 이런 것을 보여줄 때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복지도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쪽으로 가야하고, 그래야 젊은 도시가 되고 학생들이 오려고 하고 살고 싶어 하고, 젊은 사람들은 교육 때문에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젊은 초중고 학생들이 부안에 가면 배울 게 있고 그것에 대해 동의하는 학부모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걸 학교가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학교에서만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행정에서나 지역사회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지요.
사회좀 더 압축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면 밀도가 있었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요, 그래도 부안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보니 젊은 일꾼의 필요성과 그 젊은이들을 어떻게 길러내고 지역에 정착하게 하고 힘을 받게 하느냐, 이런 문제로 의견들이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고이석 부안의 미래가 아이들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도록 하려면, 그래서 부안이 거대한 노인요양시설이 아닌 아이들이 더 많이 올 수 있도록 하려면 다양한 부분에서 물적 토대나 프로그램들을 좀 관심을 가져주십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정수하여간 뭐 노인복지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부안에 많이 잘 머물게 할 수 있느냐겠죠. 나는 그쪽에 관심은 있지만 제가 뭐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거 같네요. 우리 시장에는 학생들이 교복 리폼 하러 일 년에 꼭 한 번씩은 들리는데, 어릴 때 시장을 많이 와 보는 것이 커서도 시장을 가까이 하는 기초가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고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크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이춘섭농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떠안고 해결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합니다. 혹시 도시에 나갔다가 좌절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돌아오려면 현재 여기 사는 사람들이 소농형태가 됐거나 희망을 갖거나 좋은 교육이 있거나 했을 때 가능하겠죠. 그러니까 그 희망을 만들어 간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늘 각자 분야가 다른 쪽에서 오셔서 특히 학교교육 얘기는 오늘 굉장히 잘 한 거 같아요. 우리 복지가 제도교육이나 지역사회와 만나서 작지만 희망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황창호사실 행정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노동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 척결을 목표로 해서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데 저희가 행정이나 정책의 실책에 대해서 내놓고 그럴 입장은 아닙니다. 사실 부안군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나 집행부나 다 같이 하나가 되서 좋은 정책과 시책을 내놔서 발전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밖에 다른 건 없습니다. 제가 노조활동하면서 집행부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럴 순 없잖습니까? 그런 상황입니다.
임덕규부안이 참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인데 너무 땅값이 비싸다 보니까 실제로 귀농을 했다가 다시 전라남도 지역으로 간 사람들도 있고 여기를 오려고 알아보다가 포기하고 못 오는 경우도 있어요. 빈집을 군청에서 관리를 하는데 거의 다 외지사람들 소유래요. 주로 투기목적으로 사놓은 것들이라 귀농인들이 필요해도 절대 안 빌려준다는 거예요. 왜냐면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으면 혹시 판다거나 이랬을 때 문제가 생겨버리니까 그냥 집이 다 무너져 쓰러져도 그냥 두는 거예요. 우리 지역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살 수 있고 이 지역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 지역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들과 방법들을 마련해 나가는 게 과제인 거 같아요.
김진원제가 제기했던 문제는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지방은 언제나 중앙에 종속되어 있거든요. 지방이 지방으로써 고유한 발전모델을 찾아나가기 위해서는 자본논리라는 고리부터 뜯어나가야 한다, 즉 새로운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고, 사실은 부안에 있어서는 10년전 핵폐기장 싸움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보면 집단적으로 시작을 했고 또 나름대로 그러한 결과물로써 독립신문이 창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러한 가치에 대한 문제를 우리사회에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그러한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사회예, 고맙습니다. 마치죠. 긴 시간 고생들 하셨습니다.
채록/김소영 총무
사진/제구연 시민기자
사회·정리/우병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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