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성황산 자락에 올해로 설립된 지 600년이 된 부안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부터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관학 교육기관으로 교수와 훈도를 두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땅과 노비를 주어 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수령은 직속기관인 향교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으며 향교의 흥함과 쇠함을 따져서 수령의 인사에 반영하였고 수령은 매월 교육현황을 관찰사에게 보고를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방향교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직책이 전교(典校)이다.
얼마 전 추계 석전대제를 마친 김찬석 전교(81)를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석전대제가 무엇입니까?”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정성스레 빚은 잘 익은 술을 받들어 올리는 큰 제사’라는 뜻입니다. 원래 모든 향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인 대성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1894년 갑오개혁 때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기능은 없어지고 유교에 큰 가르침을 주신 성현들에게 제를 올리는 것만 남게 되었지요.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 제를 지내는데 그중에서 음력 2월과 8월 공자의 탄생일과 서거일에 맞추어 큰 제사를 지내는 것이 석전대제입니다”
“공자께 제를 올리는 거군요”
“아니! 공자를 포함해서 5성(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송조4현, 동국18현께 올립니다.”
“원래 한학을 공부하셨습니까?”
“공과대학을 나와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을 했습니다. 퇴직할 무렵 고향으로 내려와 친구 따라 우연히 향교에 나오게 되었고 그 후 성균관에서 늦게나마 공부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한문과 예절지도를 배워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널리 알리려고 노력 했습니다. 우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부터 잘못된 인사예절을 고쳐주려 노력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은 저와 인사할 때 이렇게 서로 공수(拱手)를 합니다. 지금도 향교에서는 지속적으로 대민교육을 하려고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아! 요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배꼽인사가 ‘공수’이군요.”    
“또, 향교에서는 지역의 주요문화재를 지키고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데 예를 들면 간재선생을 모시는 계양사나 보안의 반계사당을 ‘문화모임 도울’같은 문화재 지킴이 모임이나 학생들과 함께 청소도 하고 풀도 뽑고 하지요. 지역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참 고맙지요”
부안김씨 집성촌인 부안읍 모산리 수내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때 부안국민학교를 다녔고 전북대를 졸업한 후 모교인 남성고에서 평생을 교직에서 보내셨다는 김찬석 전교는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좋은 친구의 소중함을 일러주신다.
“국민학교 댕길 때 참 먹을 것이 귀했죠……. 깜밥(누룽지)이 가장 귀한 간식거린데 모두들 없는 형편이라 어쩌다가 깜밥이 생기면 어떤 녀석은 화장실가서 몰래 먹곤 했어요.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조용히 네게 손을 까불며 부르는 거예요. 그러더니 미깡(밀감의 일본식발음)이 탁구공만한데 그것을 딱 쪼개서 반은 제 입에 넣고 또 반은 내 입에 넣어주는데 처음 맛 본 미깡의 맛이 정말 맛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지요. 인천에 사는 그 친구는 지금도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자고 가곤하지요.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제처럼 기억이 나요” 마치 내게 그런 친구를 얻든지 아니면 그런 친구가 되도록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과학전람회에 출전해서 전자저울의 원형을 최초로 만들어서 특상을 받았는데 그때 특허를 냈다면 큰 부자가 됐을 거라는 이야기, 고등학교 3학년 때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간재선생 증손녀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차라리 도망갈까도 생각했으나 평소 몸이 허약하신 어머니 병이라도 날까봐 싫다고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본 B-29폭격기의 커다란 번쩍이는 신기한 연료통이야기(당시 일본은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숟가락 젓가락까지 공출하여 대나무 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정도여서 쇠붙이라고는 구경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 연료통은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군이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반응을 살피려고 변산반도에 떨어뜨린 것을 부안초등학교로 옮겨온 것이란다)가 차분하면서도 흥미롭게 이어졌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힘입니다”라는 말로 배움에는 끝이 없음을 강조하시는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선생님의 모습을 본다.
일주일에 세 번의 혈액투석을 받는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김찬석 전교를 보면서 우리 곁에서 건강히 오랫동안 당산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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