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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에서 배운 것
  • 황재근(전북문화저널 기자)
  • 승인 2014.09.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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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일본기행을 다녀왔다. 지역의 문화예술과 전통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쇠락한 도심을 재생하고, 무너지는 마을을 일으킨 사례를 찾아가는 것이 주제였다. 도심재생과 마을만들기는 우리나라, 우리지역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많은 자원이 투자되고 모범적인 성과들도 나오고 있지만 역시나 대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기행 전 자료를 찾고 정리하며 우리나라의 사례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봤다. 더 많은 돈이 들었나? 더 좋은 자원이 있었나? 더 많은 시간이 들었나? 글과 사진만으로는 그 차이에 대해 인식하기 어려웠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한데, 일본이라고 얼마나 다를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길이었다. 
일정은 고베에서 구라시키 전통미관지구, 나가하마의 쿠로카베 거리를 거쳐, 세계문화유산인 시라카와고와 작은 교토라 불리는 다카야마, 전통여관마을 쯔마고, 그리고 나고야까지 이어졌다. 자연환경이나 기후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대도시부터 농촌 마을까지 잘 정돈된 거리는 인상적이었다. 전통가옥을 활용한 관광지들은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버려진 건물들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지혜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게 다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하고 있는 일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에 간판들을 조금 정돈한다면 비슷한 느낌이 되지 않을까? 군산 근대문화유산도 박물관으로 새로운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겉모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있었다.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 좀 더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와 비슷한 과정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차이는 바로 차였다. 인도도 따로 없는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차 한 대를 찾기 어려웠다. 항상 주차난으로 시달리는 전주한옥마을과는 딴판이었다. 공영주차장이 있긴 했지만 규모가 한옥마을보다 크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관광객 차량이야 주차장으로 해결한다 해도 주민들과 상인들은 어쩔 것인가. 해답은 차고였다. 우리나라라면 도로변에 주차됐을 차들이 전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작은 차고에 딱 맞는 작은 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화단과 정원이었다. 일본인들의 정원사랑에 대해서는 들은바 있었지만 그것은 큰 마당이 있는 저택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인식이었다. 마당이 좁으면 좁은 대로 자그마한 꽃밭이 꾸며지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놨다. 마당이 없는 골목길에는 화분이 놓여있었다. 탐스럽게 익은 방울토마토부터 이름 모를 꽃 화분까지 집집마다 자신이 가꾸는 식물들을 집 앞에 내놓고 있었다.
차와 화단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내 마을, 내 도시를 가꾸는데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이었다. 차에 대해서만 이라면 법과 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화단까지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제야 글로 읽었던 거리의 형성과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가하마 시의 쿠로카베 거리의 경우 쇠락해가는 구도심을 살리기 위해 지역 유지들이 중심돼 도시재생 주식회사를 만들어 나섰다고 한다. 여관마을 쯔마고는 낡은 건물들로 이뤄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먼저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정해 지켰다. 주민이 먼저 수요를 제공하고 그것을 지자체와 국가가 지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무원과 학자들이 기획안을 만들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단순히 ‘일본인들은 전통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는 말처럼 일종의 국민성으로 일반화시키면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다. 쿠로카베 거리의 경우는 수백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을 축제가 있었고, 그 축제를 주도했던 조직이 도시재생의 주체가 됐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큰 일이 생기면 그제야 각종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와의 차이다. 이런 공동체가 있어 일상적으로 지역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모아졌고, 또 행정에서도 대화의 창구를 단일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런 공동체들이 있었을 터다. 그나마 농어촌의 마을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 농어촌의 인구는 소수일 뿐이다. 도시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급작스럽게 진행된 우리의 도시화 과정에서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 여유를 갖지 못했다. 아마 이런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공동체가 생겨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의 기쁨은 컸지만, 그만큼 우리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더 진했다.
 

황재근(전북문화저널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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