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택시 앞에서 웃고 있는 모자쟁이 택시기사 윤여광씨
좋은 일이요? 불러주는 게 고마울 뿐이죠

병원과 약국은 불편하고 아파서 찾게 되는 곳이다. 특히 부안처럼 농촌의 경우에는 고령의 노인이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병원에 들러 진찰과 치료를 받고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할머니들은 “모자쟁이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그렇게 빵모자를 쓴 택시기사를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왜 할매들은 모자쟁이를 좋아할까?’ 궁금해서 윤여광(45) 개인택시 기사를 만나보았다.
“윤여광씨 차가 바뀐 것 같은데요?”
“아! 예! 9년 동안 타던 녀석은 법적으로 더 이상 운행할 수가 없어서 폐차 처리했습니다. 저 차는 한 달도 안 되었습니다”
“9년 동안 영업용 차량을 운행했다면 주행거리도 꽤나 될 것 같은데요...”
“9년 운행에 160만 킬로를 주행했습니다. 그래도 폐차 전까지도 잘 굴러갔습니다. 제가 차계부를 꼼꼼히 적으며 미리 미리 소모품을 갈아주고 해서 관리가 잘 된 덕분이죠”
“저 같으면 그렇게 내구성이 좋은 차를 또 살 텐데 다른 차를 사신 이유는 뭔가요?”
“차가 좋아서 오래 탔다기 보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프기 전에 예방접종 같은 것을 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동급차량이라도 이번에 뽑은 차가 실내가 넓어서 손님들께 더 나은 편안함을 드리기 위해서 바꿨습니다.”
“전에 차도 디자인이 특이하던데 이번 차도 다른 차와 좀 다르네요. 바퀴에 노란 색도 있고요”
“제가 모자를 쓰는 이유와 비슷한데요. 할머니들이 제가 모자를 벗으면 못 알아봐요. 하물며 차는 불러놓고도 몰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할머니들에게 나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너무 튄다고 동료 택시들이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
“할머니들은 왜 그렇게 모자쟁이 택시를 좋아합니까?”
“불러주시니 고맙기만 합니다. 사실 제가 모시고 다니는 분들 중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택시경력 20년에 60,70세에 처음 만난 고객들이 이제 80,90이 넘었습니다. 해마다 중풍으로, 치매로,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의 손발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시니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맘이 저절로 막 생겨요. 그러면 맘 가는 대로 몸으로 하는 거죠”
“지금도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언젠가는 평소 모시던 91세의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영양제를 맞아야겠다고 절 불렀어요. 늘 하던 대로 할머니를 업어서 모셨는데 종잇장처럼 가볍더군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제 등 뒤에서 할머니가 제게 ‘윤기사 참 따숩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집으로 다시 모셔다 드렸는데 그 다음날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는 저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더군요. 또 한 번은 온몸이 아파서 고생하시던 분이셨는데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서 얼굴도 굳고 말수도 적어지더니만 결국 음독을 하셔서 구급차보다 빨리 도착한 제가 병원에 옮겨드렸는데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제가 더 잘해드릴 것을...’ 하며 후회합니다”
“쉽지 않은 일들을 참 쉽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들이 있어서 좀 편해진 면도 있습니다. 요양보호사제도가 없을 때는 손님을 모시고 가서 업어다 방에 내려놓고서는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빨래야 세탁기가 하지만 빨래도 돌리고 그랬거든요. 눈으로 보고서는 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터뷰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자 얼른 전화를 받고는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바쁜 심부름 연락이 와서 가봐야 될 것 같네요”
윤여광씨는 아침이면 ‘오늘도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구나. 후회하지 않게 따뜻한 맘으로 감사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써왔던 일기는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소홀히 했던 손님은 없었나?’ ,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나?’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생김새는 임꺽정의 많은 화적동생들 중의 하나처럼 생겼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뜻한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앞서 말한 평교에 사셨던 할머니께서 윤여광기사의 등 뒤에서 느꼈던 따숩다는 느낌은 여기에서 배어나왔으리라 짐작된다. 독수리오형제는 지구를 지키고 모자쟁이 택시기사는 부안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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