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아빠 김영오씨네 집에 쌀 있다. 혹여 쌀이 없다 해도 이웃에 있을 테고, 이웃이 아니더라도 그이가 밥만 먹겠다고 하면 전국에서 쌀 내놓을 사람쯤은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 그는 기어이 밥을 굶겠다고, 굶다 죽겠다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꿈쩍 않고 앉아 있다.
말이 쉬워 39일 단식이지, 끼니로 치면 117끼니요, 쌀 씻은 물은 내를 이룰 것이며, 그 동안 장마와 무더위가 지나갔고, 벌써 가을 문턱으로 한 계절이 흐를 만큼 유구한 시간이다. 단식 제대로 했다면 이미 쓰러졌어야 한다고 일갈한 어느 국회의원 말마따나 유민아빠에게 의구심을 보내는 냉철한(?) 분들은 39일은커녕 3.9일 만에 어떻게 돼도 됐을 것이다.
그에게는 단식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럽다. 그저 쌩으로 독하게 굶는다는 표현 외에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죽하면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수십만 군중 가운데 유독 그의 손을 잡았겠는가. 교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꼭 잡은 그의 손을 통해 이제 그만 밥 먹으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책임 있는 자들에게 제발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가 밥숟가락을 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교황이 한국에 도착해 처음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았을 때 박근혜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해줘서 감사합니다.” 온 국민이 비통해하는 참사 앞에서 교황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위로를 보내는데,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물론 상식적으로 볼 때.
더구나 우리 대통령이 어떤 분인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유족과 국민들의 슬픔을 대변하듯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자제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분이다. 그러니 국민과 국가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그가 교황께 그쯤 인사도 안 한다면 예의가 아닐 터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듣는 순간 왜 모골이 송연해졌을까. 곰곰 씹어본다. 한쪽에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결단코 밥숟가락 들지 않겠다고 바위처럼 버티는데, 한쪽에선 낄 자리 안 낄 자리 밥숟가락 놓을 공간만 보이면 들이미는 깃털처럼 가벼운 ‘밥숟가락 얹기’ 신공이 오버랩된 건 지나친 억측일까.
어느 집안에서 사고가 났다. 부모가 집안 관리를 잘못해서 아이들이 크게 다쳤다. 그런데도 그 부모는 잘못된 문제를 고치기는커녕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들의 요구도 묵살하다가, 지나가던 한 권위 있는 어른이 다친 아이들을 위로하자 얼른 앞으로 나서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콩가루 집안의 내력인 밥숟가락 얹기 신공이라고 한 대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난 정권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신공을 뛰어넘어 ‘잘된 건 내 공, 잘못된 건 네 탓’의 결정판인 셈이다.
물론 박대통령이 그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나라를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사람이 그렇게 야비할 리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다만 교황의 위로 한마디에도 감사를 표할 정도로 국민에 대한 애정이 깊은 대통령이 유민아빠 영오씨가 39일이나 쌩으로 굶고 있는데 왜 위로 한마디 안 하는지 참 의아하다. 남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다가 감사를 표하는 것보단 직접 만나 열 번 스무 번 위로하는 게 훨씬 쉽고 번거롭지도 않을 텐데.
더구나 유민아빠가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저렇게 성화를 하고 있으니 박대통령으로선 발품 팔 일도 없는데 말이다. 암튼 상식적인 사람의 머리로는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다.
유민아빠는 혹시 해석이 되나 싶어 그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본다.
“......당연히 구조되어야 하는데 아무 구조를 하지 않았고 유민이가 뒤집힌 뱃속에 갇혀 죽어가는 걸 제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왜 내 딸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독립된 조사위원회에 강력한 조사권한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이 있어서인지 정부, 여당은 유가족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하고 유가족을 음해, 방해했습니다. 우리의 간절함,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지 못하면 사는 게 의미 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우리의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39일이나 밥을 쌩으로 굶는 매우 중뿔난 남자 유민아빠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해 안 되는 것을 어거지로 이해하려고 골머리 싸매기보단 그냥 상식적인 사람들끼리 상식적으로 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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