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작물보다 빨리 자란다. 콩을 심어놓고 며칠 지나지 않아 빠끔히 머리를 내미는 콩포기 사이로 풀들도 싹이 트기 시작한다. 풀은 콩보다 빨리 자란다. 미처 손을 쓸 틈 없이 콩이 크는 속도를 따라 잡는다. 부랴부랴 고랑을 괭이로 매 본다. 하지만 콩 포기에 바짝 붙어 난 풀은 소용이 없다. 며칠 지나니 살아 남은 풀들이 또 자라기 시작한다. 어느새 콩보다 더 빨리 자라고 있다. 괭이에 긁힌 풀도 살아나 함께 큰다. 한 달 여 지나자 밭은 풀밭으로 변해 간다. 콩은 풀 속에 있다. 콩 위로 자란 풀들을 낫으로 자르다가 아예 예초기로 깎아 낸다. 제법 콩밭처럼 보인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콩밭은 다시 풀밭으로 변한다. 이제는 한쪽에서 풀을 뽑기 시작한다. 한 걸음 가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하루를 풀밭, 콩밭에서 헤매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고 굳은 결심을 한다. ‘그려 콩농사는 내년에도 지을 수 있는 것이제’. 내년 농사를 잘 짓기로 다짐하며 콩 농사를 포기한다. 대략 10여 년 전 이야기다. 댓 마지기 콩을 심어놓고 포기에 이르는 과정이 그랬다는거다. 옆집에는 구암댁이 살고 있었다. 구암댁은 아침밥을 언제 먹는지도 모르게 새벽에 콩밭에 나와 한쪽부터 싸드락 싸드락 콩밭을 맨다. 한 일 주일쯤 지났을까... 구암댁의 콩밭에는 콩만 남았다. 그 때 이미 여든이 넘었던 구암댁은 구암 양반이 돌아가신 뒤로 딸네집으로 갔다는데. 지금은 어느 콩밭에서 고수의 호미를 갈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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