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낙천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첫인상은 그 말과 맞아 떨어졌다.
- 원래 이름은 최핀키가 아니지요?
“네, 핀키 솔리베 이그나시오! 이게 내 이름였어요. 핀키가 이름이고 솔리베는 엄마의 성, 이그나시오는 아빠의 성이지요. 그리고 최씨에게 시집을 가면, 엄마 성을 빼고 그 자리에 아빠 성을 붙인 다음, 그 뒤에 남편 성을 붙여요. 핀키 이그나시오 최!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성을 앞에 붙이니까, 그냥 최 핀키! 이렇게 됐어요.”
- 1996년에 오셨으면 꽤 일찍 한국에 오셨네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또래 아이들은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친구들은 외국에서 취직하기 위하여 간호사가 되기도 했지요. 필리핀의 정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좀 더 활기찬 다른 나라를 동경했던 것 같아요. 저는 대학을 휴학하고 약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약사분이 어떤 종교 모임을 소개해주면서 한국 남자를 소개 받았어요. 내가 살던 곳에 한국 출신 분들이 몇 분 있어서 그 분들에게 문의를 했는데, 그 중의 한 분이 너무 좋게 소개를 해 주시는 거예요. 전북 부안을 지도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살기 좋은 도시임에 틀림없다고 했지요. 그래서 저는 꿈에 부풀어서 비행기를 탔어요.”
- 와 보니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나요?
“많이 달랐어요. 공항에서 한 4시간 걸려서 내려와 밤중에 도착했는데 주변이 온통 깜깜한 거예요. 제가 생각했던 것은 (지금의 전주와 같은) 그런 도시였거든요. 그런데 산 밑의 작은 마을에 들어갔으니.”
-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우선 농촌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필리핀에서도 농촌 생활 경험이 없었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농사일을 도우라는데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도착했을 때 10월이었는데 날씨도 너무 추웠어요. 다음으로는 언어 공백과 세대 차이 문화차이가 한꺼번에 있는 시부모와의 관계가 힘들었어요. 남편과는 어느 정도 언어 소통도 되고, 같은 세대 공감도 되고, 서로 사랑하는 맘이 있으니까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었는데, 시부모님은 제가 엄청 부담스러우셨나 봐요. 말도 안통하지 뭘 시켜도 제대로 못하지 집에 가고 싶다고 울기나 하지 맘에 들지 않았겠지요. 그 때 몸까지 불편하시게 되어서 아마 더 속상하셨나 봐요. 결국 남편과 김제로 분가를 하게 되었어요. 그 땐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유감스럽게도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딸 둘을 낳고 둘째가 100일도 되기 전에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6년을 혼자 일하며 애들을 기른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이 있었고, 세 번째 딸이 태어났고 그 딸이 5살이 되었다. 그 동안 군장대학교 아동복지학과에서 공부하고 졸업장도 받았다.
- 핀키씨는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필리핀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때에는 필리핀 사람이다가 어떤 때는 한국 사람이기도 하구 그래요. 페이스 북으로 고향 친구들 소식을 보면, 고향 생각이 간절해요. 모여서 동창회를 한다는데 미국에서 오는 애들도 있고, 다른 도시에서 오는 애들도 있고. 이런 소식을 받아보면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 많이 해요. 그리고 뭘 하든 친척이나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으면 살기 좋잖아요. 그래서 어떤 때는 필리핀에서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교통 불편한 거 여러 가지 생활여건이 부족한 거 이런 저런 생각하면 이젠 필리핀에서 산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하죠.”
- 여기서 향수병은 어떻게 달래나요?
“모여서 떠들며 노는 거지요 뭐. 다행히 동생들이 한국으로 시집와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요. 정읍에 바로 밑에 동생이 시집와서 자식 둘 낳고 살고 있고, 막내 동생도 여기 부안에 농사짓는 분과 결혼해서 아들 셋이나 낳고 살고 있지요. 가끔 모여서 모국어로 신나게 이야기 하면서 놀아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아직도 한국어 발음이 조금은 어색한 면도 있다. 한국인이 되었지만 아직 아니기도 하다. 이런 경계에 있는 사람은 한국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물었다.
- 나중에 나이 많이 들면 어디에서 살고 싶어요? 한국 아니면 필리핀?
“음..... 미국요! 미국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어요.”
아....! 난 지구인의 스케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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