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부안 출신도 아니고, 부안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 다만 부안과 두 번의 인연이 있을 뿐이다. 다 지나간 이야기, 서로가 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낼 필요가 있을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이 지면을 허락해주신 것은 외부자의 시선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감히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알고 있는 부안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첫 번째 인연은 2003년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신문사의 3학년 기자였다. 내가 맡은 부서는 사회부였고, 그해 우리 사회부의 목표는 ‘지역성을 강화하자’였다. 그리고 그해 지역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부안반핵투쟁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5명의 사회부 기자들은 한동안 번갈아가면서 거의 매주 부안을 다녀왔다. 인터뷰도 하고, 르포도 썼다. 늦은 밤 군청을 향하는 촛불시위 행진을 따라가다 전주로 가는 막차를 놓치고 PC방에서 눈을 붙이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처음으로 부안에 갔을 때 받았던 충격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부안의 경계선을 넘자마자 펄럭이는 노란 깃발들, 해병대 전우회 명의로 붙어있던 노란 현수막들, 거리의 상점마다, 길을 다니는 트럭마다 붙어있던 노란 스티커들. 그리고 노란 셔츠를 입은 사람들. 나는 이곳이 바로 ‘해방구’가 아닐까 생각했다. 군청의 행정력이 멈춰선 자리를 군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해 채워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몇 주에 한번, 그것도 아주 피상적인 관찰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경험을 여전히 뇌리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 동원하지 않는 자발적 참여,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조율하는 참여민주주의, 주민자치, 책에서만 봤던 개념들이 만약 현실에서 이뤄진다면 바로 이런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후 두 번째 인연이 있기까지 내게 부안은 그때의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두 번째 인연은 2009년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시기, 사람을 찾는 다는 말에 무작정 부안독립신문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 낯선 고장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박제된 부안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그 기억은 산산이 부서졌다. 봄날 부안읍에 짙게 드리우던 밤안개처럼, 지역은 침체됐고 사람들은 갈라져있었다. 6년 전에 봤던 놀라운 자발성과 활력은 어느새 무기력과 증오로 뒤바뀌어있었다.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요구를 갖고 일시적으로 함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상을 2D로만 인식하다가 처음으로 3D를 접한 느낌이랄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던 6년 전의 기억을 수정해가며 나는 학생을 벗어나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2009년, 5개월간의 짧은 부안생활도 내겐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이렇게 길게 부안과의 인연을 이야기한 것은, 지금부터 하고픈 말을 위해서다. 부안의 사회정치상을 관찰하며 내가 느낀 것은 우리 현대사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부안의 반핵투쟁은 87년의 6월항쟁과 이어진다. 다른 점이라면 87년에는 군부세력을 이기기 위한 단일화에 실패했고, 부안에서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실망시킨 점에서는 똑같다. 2003년에 봤던 부안에는 무언가 바꾸겠다는 의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넘쳤다. 2009년에 와서는 그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달랐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변화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반핵투쟁 이후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뒤를 이은 군수들은 줄줄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물의를 일으켰고 군민들을 움직였던 의지와 희망은 갈수록 퇴색되었다. 오직 하나 그 사람을 다시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가 투여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정권교체를 위해서, 군부독재의 후예들을 막기 위해서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제1야당에 표를 몰아주게 되는 그 모순처럼. 부안도 꼭 한국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런 양상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보다는, 그래도 그 사람만큼은...... 그런데 다른 군수들은 그 사람과 그렇게 많이 달랐을까.
나는 2009년 이후로 내 지역구보다 부안의 선거결과를 더 관심있게 지켜봐왔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10년 만에 김종규 군수가 당선됐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2003년의 싸움을 부안군민들은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그 투쟁은 헛된 것이었을까. 내가 고민해보고 내린 결론은 부안군민들은 변화와 화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루하고 소모적인 대립을 끝내고 한풀이 선거를 그만두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기회다. 이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쉽게 풀 수 있는 기회다. 이 매듭을 묶은 사람에게 다시 그 기회가 돌아갔다. 여기서 서로의 기억을 긍정하고, 서로의 역사를 합쳐 다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의지로 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숨기고 잊으려만 하지 말고 이 기회에 꺼내놓고 풀어놓기를 바란다. 그 누구보다도 그렇게 해야 만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민선 6기 김종규 부안군수와 부안군이 희망차게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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