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이란 농민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는 제반 문화 현상을 일컫는다. 지역에 따라 풍장굿, 풍물굿, 두레굿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농악을 굿이라고 부르고 대보름, 백중 같은 세시놀이와 관련 있는 것은 농악이 단순한 연희 혹은 놀이가 아니라 악한 기운을 쫒고 좋은 기운을 맞이한다는 민간신앙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임을 보여준다. 농악의 기원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고 대규모의 집단 노동이 이루어지면서다. 아울러 노동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풍물패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각종 의식이나 놀이에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발전했을 것이고 추정한다. 한때 민속신앙을 미신이라 부르던 시기에 농악도 “조국근대화”라는 광풍에 휩쓸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농악은 복을 바라는 기복의 의식 행위라는 의미보다는 음악, 춤, 놀이의 문화, 예술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우리 삶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전통문화 예술원 바람꽃”(단장 이철호 47)은 자칫 잘못하면 사라질 수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형의 유산을 지킨다는 큰 뜻과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신명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농악단, 풍물패, 굿패이다. “바람꽃”은 5년 전 이철호단장을 중심으로 호남우도농악의 걸출한 상쇠인 나금추선생(전북무형문화제 제7호, 76,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모태가 되어 시작되었다. 전라도 서남부 지역인 이리, 김제, 부안, 고창, 정읍, 영광, 광주지역에서 전승되어지는 농악이 호남우도농악인데 이 지역 농악은 가락이 화려하고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부안농악 상쇠 기능보유자인 나금추선생을 모시고 어쩌면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부안농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이들은 현재의 옛 고성초등학교에 둥지를 틀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 회원연습시간을 가진다. “우리 선생님은 17살 때부터 60년을 눈 뜨면 해온 것이라 삶과 농악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제자로서 평생을 배워도 가능할까 싶어요...” 이철호씨의 말속에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묻어난다. 바람꽃의 주요 활동은 학교 및 주민자치센터를 통한 풍물교육활동과 여름방학, 겨울방학 동안에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나금추선생으로 부터  전수활동을 한다. 또한 각종 축제나 행사에 초청공연을 하기도하고 요양병원에 위문공연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오랫동안 준비하여 “나금추 부안농악 정기 발표회”를 가졌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부안에 이런 농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다들 깜작 놀란 거예요. 선생님과 저희들도 이를 악물고 ‘한 번 해보자’ 한 거죠. 사실 우리 선생님이 나이도 드시고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보니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거든요...”
기초반 교실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단원이 열심히 “덩더꿍”을 하고 있고 그 옆방에서는 태평소 연습에 열중이었다. 폐교에 자리를 잡은 이유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맘껏 두드리고 불고 뛰며 말 그대로 자~알 놀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부부회원이 많으며 그래서 연습에도 공연에도 어린아이들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공연에 자반뒤집기를 하던 회원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었다. “아! 예! 제가 변산공동체학교에서 풍물을 가르치던 아이들입니다. 자반뒤집기가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녀석들은 에너지가 넘치는지 아주 잘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7월 4일) 나금추 부안농악 창립5주년 놀이마당이 있습니다. 꼭 놀러 오십시오. 두부에 막걸리 먹으면서 한 번 놀아보게요... 신입회원이 많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렇게 잘 놀면 들어오겠죠?”
임꺽정에게는 힘을 써야할 때를 알려준 갖바치 스승이 있었고 허준에게는 유의태라는 제 몸을 내어준 스승이 있었다. 나금추선생과 이철호단장과 단원들은 훗날 어떤 스승과 제자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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