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또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정치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므로 제한된 정보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동 중에 몇 가지 정보를 주면서 판단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일화는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대통령이 경황이 없는 와중에 비서가 살짝 끼어들어 ‘이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판단에 대하여 충분히 자신할 수 없으므로 그런 경우를 만들지 마라는 지시다. 판단을 요구하려면 그에 합당한 정보와 시간을 주고 판단을 요구해야 하며, 그런 상황에서 판단한 것에 대하여는 대통령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는 말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의 중요성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었다. 정치인의 판단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그래서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판단을 내린 후에는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는 명심해야 한다.
현재 부안의 군수 후보는 2강 1약의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2강을 이루는 후보들이 모두 부안 사회에 큰 실수 내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다수 군민의 지지를 받고서도 군의 명예를 더럽혔으며, 또 한 사람은 다수 군민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독단적으로 집행한 전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군수 후보가 되어 나왔다. 이 분들은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어떻게 정리한 것일까? 자신의 행위 및 판단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을 졌으며, 어떻게 고쳐 나온 것일까? 군민들은 세심하게 살펴 판단해야 한다.
  정치인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실패했을 때, 실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방법은 반성이다. 반성! ‘돌이켜 살펴보는 것’이다. 무엇이 잘 못 된 것인지, 나는 어떤 판단을 했어야 하는지, 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살피고 살펴야 한다.
반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우선 공감이다.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어야 반성이 시작된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국민들끼리는 공감의 눈물을 흘리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공감 능력이 없으니 어찌 반성이 있겠는가?
군민의 입장에서 공감을 했으면, 그 다음에는 속죄의 시간, 숙려의 시간을 갖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변해야 한다. 반성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드러내 주지 않는다. 반성했다는 것은 반성한 후에 나타나는 행동으로, 변화된 삶의 모습을 통해서만 그 반성의 의미와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에 감동받지 못하는 것은 그 사과 뒤에 보여주는 행동이 전혀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두 후보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야 한다. 두 후보는 어떻게 바뀌었나? 근거를 찾아야 한다. 궁금하면 붙들고 확신이 들 때까지 말이라도 붙여봐야 한다.
필자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제시된 공약집을 살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은 군민과 군정에 대하여 세밀한 성찰을 했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 전보다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또 한 사람은 세부 항목은 달라졌으나 생각하는 방식은 똑같아 보였다.
정치 관점에서 군민과 군민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았다. 군민은 대상화 되어 있었다. 누가 달라졌고, 누가 변함이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한 번의 잘못이 평생 낙인이 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사건은 그 사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데, 그 사건이 그 사람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을 재차 단죄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만 과거 잘못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단면이 더욱 공고해진다면 현재의 그 모습에서 과거의 잘못이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지지할 때의 근거는, 그 후보가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그가 그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식견과 실력을 키워냈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만약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후보는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데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그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변화한 게 없어 현재도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근거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과거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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