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회 이어온 촛불집회 무엇을 낳았나“촛불집회 끝나면 할머니들 섭섭해할 것”

부안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십년 전 변산면으로 귀농한 김희정(변산면· 37)씨는?지난해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가열차게 전개될 때, 촛불 집회 사회자로 활약하다 한 때 수배를 받기도 했다. 현재 집회에 참석하는 할머니들에게 단연 인기가 높은 김희정씨. "점심을 사먹으라며 한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은 적도 있다”는 김씨를 통해 촛불집회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촛불집회 분위기가 처음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가.
지금은 투쟁이나 싸움 분위기는 거의 없는 편이다. 등교거부 할 때는 학생들도 많이 나왔고, 내소사 사건 이후에는 강경한 분위기가 있었고. 요즘은 문화행사 중심으로 하고 있다.

반핵투쟁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노래가 유행했는데.
군민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반핵출정가, 그날이 올때까지 등이다. 군수를 풍자한 당나귀송 같은 것은 학교 다닐 때 부르던 곡을 바꿔서 개사한 것들이다. 이번 목요집회에는 ‘옹헤야’를 개사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또 재밌는 구호들이 많았다. 주민들이 만든 건데, 구호가 딱딱하지 않고 재밌는 것들이 많다. 그만큼 잘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회 넘게 이어온 비결을 무엇이라 보나.
집회 그 자체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모임들을 주민 스스로 만들어서 꾸려나갔다는 점이다. 다른 집회와는 다르게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본다.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보다는, 늘 마주보는 얼굴들이 있으니까 반가웠다. 매일 매일 한번도 빠지지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에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늘 업고 왔는데, 그 녀석이 벌써 커서 할머니 손을 잡고 나온다.

집회에 참석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제일 끈질긴 분들이다. 그 전에는 핵폐기장 보따리라고 해서, 겨울에는 깔개, 스티로폼, 보자기, 초 등을 직접 가지고 다니시는데, 집회 때 쓰는 물건들이 그대로 그 보따리 안에 들어가 있다. 젊은 사람들하고 연세 드신 분들하고 차이점이 그건 거 같다. 할머니들은 아끼는 분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아끼는 게 생활이 안된 거고. 생활구조 자체가 쉽게 쓰고 버리게끔 바뀌어 버린 것 같다. 몇몇 젊은이들은 다르게 살아봐야겠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멀었다. 빨리 변화되기도 힘들고. 나 스스로도 못 변하고 있다.

촛불 집회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문화로 보면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하시는 분들이 계시구나”,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농사 착실히 짓고 사는 게 농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해야 할일 중의 하나가 됐다. 집회에 꼬박꼬박 나오시는 분들이 다 같이 그러실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가장 많이 배웠다.

촛불집회가 다른 형태로 전환되어야 할텐데?
단순히 촛불집회만 볼 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역량이나 참여도가 그 전보다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군에서 하는 것 보다는 각 면에서 주민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모임을 갖고, 전체로 모이는 것은 일년에 한 두번 정도 했으면 좋겠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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