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이 지났다. 공들여 지은 집에서 4남매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알뜰살뜰 살아온 세월이다. 그 세월동안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직장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증손자도 생겼다. 나이가 들어 몸이 많이 약해진 것을 빼면 자식들도 잘 살고 있고 모든 것이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낮이면 텃밭에 나가 소일을 하고 저녁에는 아궁이에 적당히 불을 지피고 할머니와 오순도순 살았다. 새로 집을 짓자는 얘기가 가족들로부터 나온 것은 5,6년 쯤 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 사는 집도 좋은 데 굳이 새 집을 지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한사코 새집 짓기를 반대했다. 하지만 아들이 정년을 마치고 부모님을 모시고 새집을 지어 살겠다는 데 결국 뜻을 접고 말았다. 세간을 비닐하우스에 옮기고 양철 지붕을 뜯어 내고 함석지붕을 철거하는데 일주일 쯤 걸렸다. 문짝들은 정성껏 뜯어내어 쓰겠다는 사람에게 주고 서까래랑 기둥과 보등도 조심스럽게 뜯어 다시 쓸 수 있도록 골라 놓았다. 포크레인은 창고랑 헛간이랑 본채를 한나절도 안 되어 모두 철거했다. 수북이 쌓아놓은 옛집의 잔해물을 보며 짓는 데는 몇 달이 걸렸는데 뜯는 데는 한나절도 안 걸렸다며 허탈해 하신다. 이제 여기에 두꺼운 콘크리트로 기초를 하고 예쁜 벽돌을 골라 새집이 지어질 것이다.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따순 물이 펑펑 나오는 집에서 말년의 느긋함을 보내면 된다. 한데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우리 같은 사람은 옛날 집이 좋아. 불 때고 마당 쓸고.. 빗소리도 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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