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만연하다. 입춘이다. 재작년 11월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부안에 살고 싶다며 귀농을 한 형님 한분이 있었다. 이렇다 할 귀농 교육도 받지 않고 부안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바닷가에 있는 농촌에 살고 싶다며 꽁지머리를 만지작거리던 형님은 두어달 간 전주에서 출퇴근을 하며 정착에 대한 설계를 그려갔다. 안면이 익어갈 무렵 동네 이장님의 소개로 비어있는 농가를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작목반 회원들과 못자리도 하고 모내기 일도 도와주며 논 서마지기와 밭 한마지기에 벼도 심고 콩도 심었다. 뒷마당에는 알을 낳는 병아리 수십 마리를 제법 계란을 낳을 만큼 키워내기도 하였다. 가을 추수를 모두 마치고 전주 집에서 겨울을 난다고 떠난 형님은 그날로 연락이 끊겼다. 어렵사리 수소문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형님은 별로 말이 없었다. 겨울이 되고 마음이 많이 우울해 졌다고, 앞으로 농사를 짓게 될지 모르겠다고 힘없이 얘기하는 형의 모습에서 절망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며칠 전 농촌살림정리를 위해 찾아온 형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라는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는 그런 얘기였다. 형이 떠나고 한참동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농촌 사람들은 도시사람들과는 언어가 많이 다르니 마음 굳게 먹으라는 내 얘기도 별 도움이 않되었나, 혹시 나도 그렇게 언어가 다른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곰곰이 따져보다 자리를 떴다. 농사보다 힘든 것이 사람 사귀는 것이었을 터, 내성적인 형님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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