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안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었죠? 여전히 예의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 주는 형과 형수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니 형과의 인연이 어느새 25년이 되어갑니다. 막걸리에 취해 형 집에서 자고 난 다음날 TV에서 걸프전이 한창 중계되었으니까요. 부모님께 효자로, 동네 일꾼으로, 좋은 친구로, 사람 좋았던 형을 많은 이들이 기억합니다. 당연히 후배들에게도 멋진 선배였구요.
그러던 형을 생각하면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옵니다. 인심 좋게 생긴 얼굴에 새겨진 깊은 상처 때문입니다.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형은 전경들의 방패에 얼굴을 찍혔고, 한참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었죠... 그리고 성형수술을 해야 했구요. 그래도 남아 있는 상처. 지금도 그때, 얼굴이 찢겨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실려 오던 형의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언젠가 ‘야, 어쩌겠냐? 이거 훈장이야.’라며 한 마디 툭! 던진 그 말, 가슴에 담고 있어요. 언젠가는 정말 훈장 하나 달아 드려야겠다...던 약속을 또 미뤄야겠습니다.
어제는 정경식 형 전화를 받았어요. 변산에서 유기농 농사짓는 경식이 형이요. 어째 안보이는 갚다 했더니...작년부터 밀양에 가 계시네요. 밀양의 주민들께서 몇 년째 송전탑 반대운동으로 우리가 겪었던 아픔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내고 계시잖아요. 70세가 넘으신 어르신께서 분신자살을 하시고, 할머니들이 산중 천막에 농성장을 짓고 새벽마다 산길을 오르며 반대운동을 하시는 밀양. 그 현장에서 몇몇 분들과 생명농업학교를 꾸려가고 계시더라구요. 논밭을 두고 어디 쉽게 떠나지 못하는 천상 농사꾼 경식이 형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더군요.
어제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침 비가 내리시네요. 반가운 봄비가 내리시는데 마음 놓고 반기질 못합니다. 방사능 때문이죠. 정부에서는 기준치 이하니까 안전하다고 합니다만 어디 믿을 수 있어야죠. 안전기준치라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언론에서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가 주는 교훈을 대한민국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명을 넘긴 고리1호기가 연장 가동되고 있고,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이 시도되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여전히 핵발전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독일을 위시로 전 세계가 탈핵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핵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것이 진실입니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듯이.
얼마 있으면 지방선거입니다. 많은 분들이 군수와 지방의원이 되고자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언행(言行)이 일치(一致)하여야 합니다. 혹여 말과 행동이 다르면 ‘세치 혀’가 아니라 ‘행동거지’를 보고 판단하여야 할 겁니다. 부안은 2012년 또다시 고준위폐기장 후보지로 들먹거려져 주민들을 불안케 하였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잊을만하면 또 들추곤 하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부안 지역에너지 정책이 중요한 쟁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후보자들로부터 핵과 관련한 어떤 시설의 유치 여부를 아예 논의조차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에너지자립과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에 앞장서는 생태도시를 만들겠다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시절이 빨리 왔으면 싶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 약속 지키고 싶습니다. 형의 상처를 감출 수 있는 작은 훈장 하나. 고향을 돈 몇 푼에 팔아먹지 않고 지켜낸 자랑스런 부안사람들에게 작은 훈장 하나씩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안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모아낼 시절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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