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의회 의원 3명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AI가 창궐하여 군민들의 걱정이 큰 때였고, 군민이 낸 세금을 여비로 썼으며, 연수보다는 관광이 주요 일정이었다. 이 분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공개사과는 물론 여행과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이 없다.
당사자들이야 선거를 앞두고 곤혹스러운 처지라 그럴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어찌된 일인지 군민들조차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아무개네 사랑방에서, 술자리에서, 상가집에서 분노와 한숨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군민 스스로 이번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거나 시위를 벌였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부안이 거대한 침묵 속에 가라앉은 느낌이다.
다른 지자체를 한번 보자. 2000년 2월, 고령군의회 의원 8명과 직원 등 10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관광성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그러자 고령군 농민회 소속 회원 27명이 군의회 의장실을 점거하고 군의원들의 관광성 외유에 대한 사과와 의장사퇴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결국 고령군의회는 농민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의장사퇴와 공개사과, 그리고 연수경비를 일부 환수키로 했다.
2년 뒤 당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당진군의원들은 해외가 아닌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당진환경운동연합, 전교조당진군지부, 당진군농민회, 축협노조당진군지부 등 4개 단체가 군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공개사과와 연수비 환수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군의원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정직한 사람이길 바란다. (……) 양심이 결여된 능력, 그것은 바로 도둑의 능력에 다름 아니다!”
최근에는 함양군의회가 지난 2월 6일 다녀온 대만 연수를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일정을 미리 공개했으니 군민 몰래 간 것도 아니고, 또 곧 개장할 함양박물관 운영과 관광자원 활용방안 벤치마킹이 목표라는 점을 명시했음에도 함양지역 노동자연대와 전국농민회총연맹 함양지회가 ‘함양군의회 의원들의 외유 규탄을 위한 노동자 농민 공동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사실 군의원들의 관광성 해외연수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또 우리 의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같은 사태를 놓고 대응하는 자세는 지자체마다 판이하 다. 우리 군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여행을 다녀온 군의원들보다 그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군민들일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나서 공개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결국 시민사회단체에서 이른바 총대를 메야한다는 소린데, 우리 군의 진보단체라 할 공무원노조나 전교조, 농민회는 일제히 침묵이다.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다. 이들 단체뿐만이 아니다. 2014년 1월 기준으로 부안군에 등록된 사회단체만 151개에 달하는데, 그 중 어느 단체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거나 시위를 한 곳이 없다. 역시 침묵, 침묵, 침묵이다.
10여년 전, 핵폐기장 반대투쟁 승리 이후 부안에는 군민회의, 의정참여단, 줄포면농민회, 주민자치참여연대, 변산주민자치연합, 부안희망, 민주노동당 부안지역위원회, 부안영화제 조직위원회 등이 결성되면서 주민자치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바야흐로 부안에서 주민자치의 신천지가 열리나 보다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작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부안에서는 다른 지자체에서 일상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본적인 비판조차 듣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이처럼 바위 같은 무기력이 부안을 짓누르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10년 전 의정참여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 활동 중인 151개 단체와 그 구성원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어찌하여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 하나 내놓지 못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유 사건이 아니다. 혈연과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부안의 ‘침묵 카르텔’의 일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요컨대 이 카르텔이 깨지지 않는 한 부안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부패한 의회는 집행부를 감시할 수 없고, 통제를 벗어난 행정권력은 더 큰 부패와 부정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사슬을 끊자. 그 몫은 순전히 부안의 시민사회단체, 나아가 군민 자신의 몫이다. 우리 부안이 침묵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한 번 용트림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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