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의미를 다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올해의 365일이 지난해의 365일과 다를 바 없더라도 연초에는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올해는 억지스럽게 의의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로 갑오년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지식만 갖고도 갑오년이 우리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기울어가던 조선의 전통질서를 무너뜨린 갑오동학농민혁명과 그것을 기반으로 근대의 문을 연 갑오경장이 있었던 해다. 덕분에 우리의 뇌리에 갑오년은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키는 해로 남아있다. 1894년 이후 첫 번째 갑오년이었던 1954년 역시 그랬다. 전쟁 직후여서 거창한 기념행사나 학술적 연구는 없었지만, 그 해야 말로 분단체제가 굳어지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초석이었다 할 수 있다. 혼란의 시기였던 두 번의 갑오년 이후 2014년, 올해 갑오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갑오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그간의 시선은 대체로 실패한 혁명, 수많은 민중의 희생에 맞춰져있었다. 때문에 국가가 기념재단을 설립한 이후에도 기념사업의 초점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이었다. 연구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해왔다. 덕분에 이름 한줄 남기지 못했던 선조들의 싸움이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게 되었다. 이것이 지난 19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후의 성과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단지 실패한 혁명인가. 그렇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은 500년 조선의 전통적 지배체제에 결정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또 그 싸움의 경험은 이후 의병전쟁과 독립운동, 소작쟁의와 해방 후 인민항쟁까지 이어졌다. 우리 역사의 근대적 저항운동은 대부분 동학농민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전주화약을 통해 설치했던 집강소는 주민자치의 원형을 보여준다.
단지 한반도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으로 촉발된 청일전쟁은 동북아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이후 오늘날까지 한중일 관계의 기반이 되었다. 일본에 패한 청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아시아의 패자 중화를 꺾은 일본은 기세등등하게 제국주의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의의,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120년 전 갑오년은 다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는 오히려 역사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순작용을 일으켰다. 드라마, 만화, 소설, 영화 등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한 각종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하는 작품의 제작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역사적 연구와 기념사업의 성과는 필연적으로 대중과 나누어야 한다. 다매체시대에 걸맞게 그 방법은 다양해져야 한다. 갑오년 1년간 얼마나 중요하고도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는가. 왜 이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어쩌면 그 흥미로움과 역사적 가치를 아직 제대로 전파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갑오년 두 갑자를 맞는 올해, 다시 120년 전을 되돌아봐야 할 이유다. 그 고찰을 통해 2014년의 우리가 다짐해야할 새로운 사발통문,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갑오혁명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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