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하는 꿈을 꾼다

“그림은 세상과의 또 다른 소통입니다.” 부안읍에서 동그라미 미술학원을 꾸려가고 있는 고도현 원장이 하얀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25일 가을 햇살이 따가운 오후 그녀의 화실을 찾았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림 강습이 한창이었다. 짧게 눈인사를 나눈 뒤,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중앙에는 바닷속을 연상케 하는 추상화가 걸려있었고, 양쪽 벽면에는 다양한 꽃과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수채화 그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이 시선을 끌었다. 강렬하고 화려한듯하면서도 수수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섬세함과 명암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도 전해졌다.
눈이 내린 겨울 숲속의 풍경과 담쟁이넝쿨 등은 어릴적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잠시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강습을 마친 그녀가 자리를 청했다. 첫 모습은 그림처럼 화사하거나 화려함이 아닌 수수함이었다. 진한녹색 티에 자유스러운 헤어스타일. 차 한 잔을 나누며 학창시절 얘기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림도 그렸지만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질 만큼 글에 소질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편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 댔어요.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습작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거든요. 그 후로 가세가 기울어 미술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저에게는 꿈이 되었지요.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혼자서 그리고 또 그렸어요. 그러던 중 색상이 화려한 서양화에 매력을 느꼈고 기회가 돼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화가의 꿈에 한발 짝 다가서게된 것이죠.”고 원장은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자신만의 작품 철학도 세웠다.
“자연에서 배울게 참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논어 인의 사상에 ‘스스로 그러하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도 이 말과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하듯이 작품을 그리며 살고 싶은 게 화가로서 제 철학 입니다.”그녀의 말속에 지나온 자신의 삶이 묻어있었다. 고 원장의 작품은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는 그림을 넘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늘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빛. 자연에 대한 겸허함으로. 환하게. 그러나 너무 눈부시지는 않게. 별을 품고. 꿈을 꾼다.’ 언뜻 한편의 시로 착각될 수 있지만 고원장이 2008년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전시한 작품들의 제목이다. 이처럼 고 원장의 그림은 하나하나의 매력도 있지만, 작품의 의미가 연결되어 있다.
“전주에서 살다가 2000년이 시작될 무렵 고향인 부안으로 왔습니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부안의 자연풍경이 좋고 그림소재 또한 다양한 것이 매력적이어서 이곳을 선택했죠.” 그녀는 이러한 이유 외에도 또 다른 뜻이 있다고 말한다. “부안은 애향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림에 관해서는 폭 넓은 소통을 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편견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그림은 단순하게 어떤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림은 자신의 내면속에 있는 갈등, 증오, 분노, 고독, 사랑 등 다양한 마음을 표출해 작품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음을 치료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뜻에서 재능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이렇듯 고원장은 동그라미라는 갤러리 겸 화실을 운영하며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고원장은 요즘 아이들 미술 지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곰소초, 영전초, 주산초 등 방과후 미술지도 교사로 활동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 미술 수업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자신만의 가르침이 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할 때 모든 색깔을 예뻐해야 한다고 말해요. 가능하면 다양한 색을 이용하고, 아이들이 느끼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야지 아이들의 상상력도 커지고 창의력 발달에도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이처럼 고 원장이 방과후 교실이나 그림을 지도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안이 그림에 관해서는 많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부안미술의 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부안읍 주변에 그림을 감상하고 차도 함께 마실 수 있는 갤러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라북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작은 미술관 건립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문화의 시대다.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것이 아닌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안군민들도 일상처럼 그림을 그리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한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해 보는 꿈을 꾸어보자. 이 바람은 고도현 원장의 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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