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선생님이었던 게 아니시네요? 언제부터 선생님이 되셨어요?
“2013년부터 유치원에서 한자를 가르치고 있어요. 복지관에서 노인 일자리사업으로 마련해준 일자리예요.”
75세라는 거창한 나이에 새로운 직장으로 어린이집 한자 선생님을 시작하신 거네요? 애들 가르치는 것은 재미있으시던가요?
“처음에는 긴장 많이 했지요. 그런데 애들이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잘 따라주고, 점차 애들과 친해지다 보니까 수업이 재미있게 되더군요. 늘 부족함이 없는지 걱정되었지만, 애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배운 한자 자랑을 한다는 말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되었어요.”
선생님이 되기 전에 첫 번째 직업은 무엇이셨어요?
“20살에 백련리로 시집와서 이것저것 다 했지요. 처음에는 바느질을 배워서 동네 바느질로 먹고 살다가 기성복이 나온 뒤부터는 바닷일을 했고, 더 나이 들어서는 밭일을 했었지요. 5남매를 낳아서 남편이랑 두 손으로 일해서 다 교육시켰으니 안해본 일 없이 다 해봤어요.”
예? 그냥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셨던 거예요? 그럼 언제 한자는 배우셨어요?
“부안에 와서 노인 대학 한자반에서 배웠어요. 68세에 부안으로 나와서 9개월 동안 컴퓨터 배우고 다음으로 한자반에 등록해서 배웠어요. 그리고 한자자격증 시험을 하나씩 봤어요. 처음엔 5급에 도전했는데 무사히 합격하더라고요. 그 뒤로 용기를 내서 4급 3급 2급 차례로 시험보고 합격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아예 내친 김에 1급에도 도전하시지 그러셨어요?
“보려고 했는데, 겨울에 빙판 길에 넘어져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영어를 배워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요.”
배우는 이야기를 한 참 동안 나눴다. 어려서 6.25 동란으로 혼란한 사회를 겪느라 배움을 중도에 포기한 것이 한이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을 너무나 부러워했는데 이제 자식들 모두 교육시켜 시집 장가 보낸 후에 공부를 즐기고 계신다. 한자, 영어는 물론이고 탁구 포켓볼 실내골프 생활체조 등 배움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8년 전 부안읍에 오자마자 평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가 찼다. 근 70의 할머니가 넘어져 팔을 다치는 사고까지 겪으면서 1주일 걸려 자전거를 배우고야 마셨단다.
도대체 어떻게 시골을 떠날 생각을 하셨어요?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못하시잖아요.
“애들 다 결혼시킨후 두 부부만 시골에서 사는데, 남편이 몸이 좀 불편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농촌 생활을 정리하자고 자꾸 졸랐지요. 하지만 도시에 가면 갑갑하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떠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부안읍내 나들이를 했는데, 아파트 분양이 안돼서 재분양을 하고 있더라구요. 손에는 단돈 5만원이 있었는데, 그걸 들고 가서 계약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다행히 계약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5만원으로 아파트 계약하고 일사천리로 생활을 정리하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거지만, 아무튼 그 땐 그랬어요.”
참으로 운도 좋으셨다. 기적같은 일이다. 그 점이 좀 찜찜하다. 참으로 대단하고 훌륭한 생활을 하시고 있는데,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같은 길을 쉽게 갈 수 없다는 것이 좀 서글프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열심히 일을 해요. 하루 일당이 4,5만원, 좀 잘하는 사람은 7만원까지 가는데, 그 돈 버는 재미 때문에 시골에서 못 벗어나는 것같아요. 돈 버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는데, 그걸 잘 모르더라구요. 지금이라도 생활을 바꾸면 좋을텐데...이젠 여건마저 더 안좋아지고. 쯔쯔! ”
내 기억 속의 다른 할머니들은 늘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살 줄 알았간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진작에 ....”
신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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