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농대생들의 봄농활 르포

봄 농활(농촌봉사활동) 온 학생들이 농촌을 알기 위해 만든 자료집에 있는 내용이다. 농민들이 보기에는 이런 것도 모르나 하겠지만 차창을 통해 바라보던 농촌을 손과 발로 느끼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이 애쓰고 있는 흔적이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13개 학과 90여명의 학생들이 2박3일 일정으로 보안면과 진서면에서 봄농활을 펼쳤다. 13일부터 15일까지 보안면 수랑마을과 새마을, 진서면 원암마을에서 진행된 봄농활에 참가한 학생들은 고춧대를 세우거나 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등 농민들의 일손을 덜었다. 이들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서울대학교 동아리 ‘농민문제연구회 녀름지기’와 ‘여성문제연구회 한울타리’ 회원들. 봄농활대 1진이 보안면 우신마을을 다녀간 뒤 새로 찾아온 2진이다.

14일 오전, 고춧대를 세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수랑마을 복지회관에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들은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우선 라면을 끓여 허기를 달래고 뜸이 들기가 무섭게 점심을 먹어 치웠다. 잠시 쉬는 시간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던 이 마을 김형일 씨는 “농촌 현실과 실정에 대해 잘 보고 배워 어떻게 하면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겠습니다”며 화답했다.

갑자기 밖이 시끌시끌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방을 맨 채로 대학생 오빠와 누나들에게 달려들어 반갑게 안긴다. 같이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배드민턴을 치며 왁자지껄하니 마을은 일순간 생기가 돈다. 방안에서는 아이들이 윷놀이를 하자고 졸라대며 오후 일을 막아선다. 그러나 예정된 오후 일과는 시작되고 무리 지어 트럭 짐칸에 몸을 싣고 하나 둘씩 마을을 빠져 나간다.

유천리 새마을. 이곳은 산비탈에 자리를 잡은 농장이 많다. 정원수 손질, 나무 지지대 세우기, 밭고랑 풀 뽑기 등 일의 종류가 다양하다. 전체 학생 중 농촌 출신이 열에 하나 정도라서 대개는 밭일이 처음이다. 무엇이 어렵냐고 묻자 “햇볕이 따갑다”는 학생에서부터 풀 속에서 스르르 기어나오는 뱀을 보고 기겁했다며 “뱀이 제일 무섭다”는 대답도 있다. 부산이 집이라는 동물생명과학과 2학년 박탄술 씨는 “이번이 세 번째 농활로 횟수를 거듭할수록 농촌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고민도 많아진다”고 했다.

진서면 원암마을. 고추밭 고랑에 볏짚을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남학생들은 커다란 볏단을 어깨에 메거나 등에 져서 옮기고 여학생들은 볏짚을 풀어 바닥에 깐다. 남학생들은 연신 옷을 뒤집어가며 불어 댄다. 옷 속으로 들어간 검불이 성가시게 구는 모양이다.

“탕 탕 탕”

석포마을에 들어서니 공사장에서나 날 듯한 쇠망치 소리가 산을 울린다. 자갈밭에 심은 고추밭에 고춧대를 세우느라 나는 소리다. 한 사람은 밑에서 잡아주고 한 사람은 위에서 내려치고 열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고춧대를 맥주잔만한 쇠망치로 내려치는데 어지간해서는 들어가질 않는다. 흙 속의 돌에 걸려 어려운 탓도 있지만 해본 적 없는 망치질에 손이 후들거리고 잘못 내려쳐 손을 칠까봐 다들 자신이 없는 탓이다.

새참으로 바지락을 우려낸 국물로 만 국수가 나왔다. 지금의 길보다 어른 가슴높이만큼 높게 만들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석포교 위에 양념간장과 묵은 김장김치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맛있게 오후 새참을 먹었다. 올라 다니기는 힘들어도 새참 먹을 때는 쓸 만한 다리였다.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시간. 새참을 먹고 힘을 실어 내려친 망치가 미끄러지면서 손잡이와 고춧대 사이에 손가락이 끼었다. 결국 한 여학생의 섬섬옥수에 난 상처가 부어올랐다. 울지 않을 뿐 얼굴에는 울고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일을 마친 학생들의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벌거스름하다. 트럭에 몸을 싣고 숙소인 마을회관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뒤꼭지를 고추밭 주인 이영애(55) 씨가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사람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는디 아들들이 해중게 고마워서 눈물이 나네.”

저녁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마을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하며 여름 농활을 기약했고, 마을회관으로 다시 모인 그들은 WTO 쌀개방, 농지법 개악 등 농촌 현실에 대한 토론으로 서늘한 밤을 뜨겁게 달궜다.

“민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과의 진정한 연대는 우리가 농민이 되는 것이다.”

“농활을 계기로 농민분들이 생활하시는 것과 우리가 매일 먹는 먹거리의 소중함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농업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자.”

글.사진 염기동 기자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