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스승

동백꽃이 립스틱을 바르며 교정에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미는 3월입니다. 학교에서는 시작을 의미하는,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달입니다. 학교는 입학생들을 통해 시작을 알고, 입학생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통해 시작을 압니다. 재학생들은 작년보다 점심을 조금 일찍 먹는 것을 통해 시작을 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높은 학년부터 점심 식사를 하기 때문이지요.
시작이 있으면 마무리도 있는 법. 문득 지난 2월에 있었던 여러 일들이 떠오릅니다. 2012학년도를 마무리 하는 동안의 일이지요. 교단에 선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반 아이의 자퇴서를 썼습니다.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던 아이였습니다. 이미 한번 자퇴를 해서, 작년에 다시 복학 한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맡게 되었을 때에는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아이를 졸업시키리라.’하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적응을 하지 못했고, 학교를 빠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있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고 여러 번 말을 했고, 그래도 다녀야 한다는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아침마다 전화를 해서 깨우기도 했고, 때려도 보고, 학교에 나와야 한다고 사정도 해봤지요. 그러는 사이 아이도, 학부모도, 그리고 저도 지쳐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꽤 지나게 되었고, 아이는 결국 학교를 또다시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자퇴서를 쓰러 오던 날, 오랜만에 아이를 다시 보았는데 아이의 얼굴은 밝아 보였습니다. 그토록 학교에 가둬두려고 했을 때, 울적하던 얼굴보다 훨씬 좋은 얼굴이었습니다. 자퇴서를 쓰고 가면서 저에게 수줍게 작은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그만 거 하나 샀다며 내민 건 립스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미안하고 죄송했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곤 검정고시를 꼭 보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계속 연락하라며 아이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위해 나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후회가, 그리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중퇴한 아이를 이 사회가 얼마나 냉대할지, 앞으로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될텐데 하는 걱정 말입니다.
교사와 스승은 같은 말이기도 하면서 다른 말입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스승은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자퇴서를 받으면서, 스승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아직도 교사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 노력해서 그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지난 달에 명예퇴직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납니다. “평범한 교사에 머무를 나를 아이들이 스승으로 만들어 줬다. 선생은 퇴직이 없다.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제자들이 살아있는 한 선생은 퇴직이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스승, 이것을 목표로 다시 시작해봅니다. 아이들이 있는 한, 스승으로 가는 길은 아직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