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거울에 등을 돌리자
대만에서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전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게 됐다. 하지만 내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대만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TV 중계화면에 비친 대만 관중들의 반한감정이었다. 한국팀의 찬스마다 쏟아진 야유는 그렇다 치고, 유치할 정도로 저열한 그들의 반한 손팻말과 응원도구들은 낯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들을 탓하고 비웃고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전에 잠시만 스스로를 돌아보자.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인근국가에 대한 비속어 호칭이나 그들을 조롱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상대국의 재해, 재난에 대해서도 애도는 커녕 저주를 쏟아 붓기도 한다. 오랜 역사 속에 서로 부대껴 살아오며 쌓인 감정이니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근자에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단지 외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 댓글을 지속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단체로 발전하기도 했다. 여성과 성소수자, 특정지역,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증오도 이제 단순히 온라인 악성댓글 차원을 넘어 현실 세상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이는 장기적 경기침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타자’에 대한 배격이다. ‘우리’가 아닌 나머지를 모두 ‘적’으로 규정짓고 모든 증오와 분노를 쏟는 사회적 현상이다. 여기서 ‘타자’에는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포함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저 멀리에 있는 외국은 가장 쉽게 타자로 규정된다. 상호간의 우호적 행위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적대적 행위만이 뉴스가 되며, 이를 통해 더욱 확대 반복된다. 이런 증오감정은 정치지도자들이 가장 쉽게 이용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국내정치가 혼탁해질수록 외국에 도발에 가까운 언행으로 인기를 끄는 정치인들이 나타난다. 일본의 극우파들이 선거에서 매번 당선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북한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민간교류가 거의 완전히 중단된 이래 반북감정은 나날이 커져왔다. 욕하고 적대하고 증오해도 아무런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상. 오히려 적대하고 증오하지 않으면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사회풍토가 조성됐다. 지난 선거에서 진보진영은 북한에 대한 증오감을 잣대로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다.
그 증오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들에 대해 우리가 가진 협상카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북한은 유유히 3대 세습과 핵개발, 로켓발사를 완료했다. 최근엔 ‘정전협정 백지화’를 운운하며 또 다시 도발적 언행을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군은 ‘북 도발시 지휘세력 응징’이라며 맞받아쳤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저들과 똑같은 태도로 맞상대하지 말고, 대국민담화 정도를 내놨으면 어땠을까. “국민여러분, 우리 군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어제는 북이 도발하고, 오늘은 남이 맞받아치고, 내일은 또 북이 더 세게 엄포를 놓는 이런 악순환의 와중에 국민들만 불안에 떨고 있지 않은가.
타자에 대해 쏟아 붓는 증오는 마치 거울을 보고 욕하는 것과 같다. 거울을 보고 욕하니 거울도 나를 보고 욕하고, 그래서 더 크게 욕하면 거울도 더 크게 답하고. 그냥 뒤돌아서 버리면 될 일이다. 물론 쉽지 않다. 우리 스스로의 삶이 나날이 각박해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욕하는 저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 증오를 쏟아내지 않기 위해, 증오의 거울에 등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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