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전적 의미로는 생각,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라고 되어있다. 말, 즉 언어는 나와 너를 소통하게 하는 것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침팬지나 돌고래 등 식물들도 신호체계가 있으나 그것은 본능에 의한 것일 뿐이다. 대상에 대해 생각하고 그 결과를 언어로 표현하며 인류는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인간은 사회적, 문화적 존재가 되었으며 글은 사는 동안 읽을 수밖에 없고 또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쓰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글은 말하듯 쓰면 되는 것이다. 말이 글이 되기 위해서는 합의에 의해 정해진 문법적 차원에서 약간의 퇴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유치원에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워왔던 일이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나 저명인사가 어처구니없는 비문을 쓰거나 비속어를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사용해 비난을 받는 일이 종종 있곤 한다.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꿰매버리겠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정치인에서부터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과정에서 비문과 단어의 오류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단어 구사력을 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이상한 문구를 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경리 작가의 빈소를 찾아 “한국문학의 큰 별께서 고히 잠드소서” 라고 쓴 휘호다. 유정명사 뒤에 존칭 조사로 쓰이는 “께서”는 삭제해야 맞다. “고히”가 “고이”로 써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문장도 비문이고 단어도 틀렸다. 한심하다. 기성 작가는 창작 기법의 하나인 낯설게 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 간혹 비문을 차용하기도 한다. 또는 문장이 갖고 있는 의미를 더하거나 감하기 위해서도 가끔씩 모순어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장의 쓰임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척 보면 알 수 있다. 한 나라를 존재하게 하는 국어에 대한 미안함에 앞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알듯 대통령의 국어 실력에서 정치적 오류도 유추할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인간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으나 이 사안은 실수가 아닌 국어 실력의 무식에서 오는 수치이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국의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으면 그 나라의 존재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만의 고유 언어가 있었고 그것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글은 컴퓨터 자판 배열에도 딱 맞는다. 이와 같은 글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또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이유는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언어 연구로는 세계 최고인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부에서조차 합리성과 과학성 그리고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정해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필자도 간혹 실수를 범하지만 이명박의 휘호 부분은 실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여 실수라 했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범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문이나 책을 통해서도 틀린 단어와 어긋난 주술관계를 보면 문장 자체가 이상해져 독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주술부와 유치원생도 틀리지 않을 단어를 버젓이 방명록에 남긴 대통령을 우리는 어떻게 신뢰해야 할 것인가. 다행이다. 이제 임기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좋지 않은 것은 말이든 글이든 빨리 배우는 법이다. 무심코 따라하다가 옮아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어린이나 학생들은 이런 대통령의 언어를 멀리해야 한다.
또 하나 이상한 일은 근자에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를 지칭할 때 “당선인”이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표현을 쓰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항간에는 이명박 정부 인수 때부터 썼다고 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을 방송과 신문에서조차 마구 쓰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법상 '者'는 결과에 대한 합격이나 피해 또는 탈락자처럼 어떤 사안의 당사자라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당선者’가 맞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인”이란 문인 또는 정치인, 언론인, 또는 학자의 총칭인 지식인 등의 불특정 다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者’자가 놈 자 인고로 그 격을 높이기 위해 ‘인’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높이는 일은 자신 스스로 높이는 게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건만.
언어는 그 나라를 이루는 근간이다. 우리글의 세계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훈민정음의 소리나 글자꼴은 음양과 우주운행의 원리와 순리에 형이상학적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글은 이러한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바른 정치는 바른 언어에서 나오듯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예부터 인재를 등용할 때 그 기준으로 삼았던 척도인데, 말과 글이 결국 행동과 판단력까지 좌우한다는 진리에서 나온 말인 듯싶다. 우리말을 잘 사용하고 지키는 것이 결국 세계화를 향한 첫 걸음이며 백년대계를 담보하는 것 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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