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자주성과 희생정신으로 진가 발휘한 부안항쟁, 광주정신 되살려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군부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권력탈취에 저항하며 일어섰던 1980년의 광주는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의 희생으로 시작된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민주주의는 내용 없는 형식에 머무르고 있다.

몇 차례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거쳐 왔지만 솔직히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꼴인 듯싶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 되어 오늘날의 의미를 되새기기는커녕 오래전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니 안타깝기조차 하다.

이역만리 땅에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시구를 남긴 중국의 아름다운 여인 왕소군(王昭君)이 생각난다.

80년대 이 땅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싸웠던 많은 이들이 어느새 이 사회의 주도세력이 된 것 같고, 특히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던 386세대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정치무대를 휘젓고 있다. 한편에서는 당시의 군부와 독재세력이 야당이 되어 와신상담하는 꼴을 보자니 시대가 좋아지긴 한 것도 같다.

그러나 5·18은 아직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수많은 희생과 피의 대가는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전락하였다. 국회 5·18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정치인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건만 여전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해지고, 없는 이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철도공사의 유전개발과 같은 권력형 대형비리사건은 여전하며, 핵폐기장의 악령은 동해안 일대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김종규 같은 이들은 여전히 인면수심의 철면피로 주민들을 분노와 고통으로 몰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5·18 당시의 진압군인들이 정부 부처 간 책임회피로 지금까지도 버젓이 국가유공자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니 아직까지도 5·18은 광주의 몫이 되고 있다. 80년 5월의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뛰어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지역 세대 계급 계층 이념 간의 대립으로 가득하다. 진정한 화합과 화해와 상생의 정신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하지만 여기 위대한 부안군민이 80년 광주의 정신을 되살리고 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어마어마한 폭력에 대항하여, 지역이기주의라는 고립과 매도를 뛰어넘어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부안이 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피와 눈물의 세월을 촛불에 의지하며 흔들림 없이 이겨내고 역사에 유례가 없는 주민투표를 독자적으로 치러 낸 부안이 있다.

이들은 데모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법 없이도 살 농민, 어민, 상인 등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가 여전히 계속되는 김종규의 독선과 주민 협박에 맞서 묵묵히 고장을 지키고 새로운 미래의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

부안항쟁의 위대함은 주민의 자주성, 자발성,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지금까지의 집회가 가지고 있었던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를 뛰어넘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한바탕 축제와 대동의 한마당으로서 촛불집회와 각종 시위를 만들었다.

오히려 경찰들이 진압을 하기위해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해도 이를 해학과 재치로 이겨내었기에 지치지 않으며 싸울 수 있었다. 이런 부안주민들을 더 이상 분노케 하지 말라. 경찰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그 누구도!

지금 부안주민들은 이 땅이 요구하는 미완의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생명 평화 민주주의의 새로운 부안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말이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딴지 걸기’는 하지 말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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