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蜂起
제1부 - 꿈아 무정한 꿈아

흔들리는 섬 형제섬①

저격병의 임무를 맡은 계엄군 김만수 상병은 부사수와 함께 광주여고 근처에 있는 한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시민군 몇 명이 광주여고에 숨어 있으니 발견 즉시 사살 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옥상에 오르니 광주시내 곳곳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도처에서는 이따금씩 총소리가 들려왔다. 만수는 사방을 경계하며 옥상 난간으로 접근했다. 머리를 살짝 난간 위로 내밀고 내려다 본 광주여고 교정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온갖 꽃들이 만개하고 신록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부릅뜬 만수의 눈엔 계절의 여왕 5월의 고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광주여고 교정이 살기를 가득 품어 안고 있는 적들의 진지로 보였다. 나무 뒤엔 M1 소총을 든 시민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고, 교실 유리창 너머에서는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시민군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수는 부사수인 박민종 일병에게 손짓을 했다. 몸을 낮추고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 쪽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박 일병의 엄호를 받으며 자신은 광주여고 교정을 감시하고 있다가 학교 밖으로 빠져 나오는 시민군을 저격할 작정이었다.
만수는 M16 소총의 방아쇠울에 집게손가락을 집어넣고 조준경으로 우선 광주여고 교정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그런 다음 각 교실의 창문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만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책가방을 든 여고생 두 명이 교문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만수의 눈은 더욱 커졌다. 조준경으로 자세히 살펴 본 두 명의 여고생은 여장(女裝)을 한 시민군 같았다. 단발머리는 가발처럼 보였고, 교복 밖으로 드러난 손과 종아리는 영락없는 남자였다.
여고생 두명은 잔뜩 긴장한 얼굴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교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한명의 책가방은 여학생용 가방인데 나머지 한명은 남학생용 가방 같았다. 왜 한 여학생이 남학생용 가방을 들고 있는지 그 영문을 곰곰이 따져볼 겨를도 없이 만수는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단 한방의 총소리에 남학생용 책가방을 든 여고생이 푹 쓰러졌다. 왼쪽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맞힌 모양이었다.
이미 이승을 떠난 친구를 붙들고 여학생용 책가방을 든 여고생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만수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그 여고생도 머리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듯 했다.
두 여고생의 목덜미를 정조준 한 두 방의 격발로 확인사살까지 마친 만수는 박민종 일병을 데리고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타고 1층에 거의 다 내려왔는가 싶은데 황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청년과 맞닥뜨렸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교련복 바지를 입은 그 청년은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그 남학생은 대검이 장착된 소총과 검은색 곤봉을 들고 중무장한 계엄군 만수와 박민종 일병을 보더니 온몸이 굳어서 한걸음도 옮기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했다. 벌써 1층 출입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있었다. 박민종 일병이 쫓아가더니 굵고 긴 곤봉으로 그 남학생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따악’하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마도 골이 빠개졌을 것이라고 짐작되었지만 그 남학생은 피가 철철 나는 뒤통수를 오른손 손바닥으로 누르며 건물 밖 왼쪽 골목으로 달아났다.
만수와 박일병은 그 남학생의 뒤를 쫓았다. 좁은 골목이 기다랗게 이어져 있는데, 그 남학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수와 박일병은 그 남학생을 찾아내기 위해서 한 집 한 집 대문을 열고 수색을 했다. 그러던 중 대문에 피가 묻어 있는 집을 발견했다. 살짝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 우측의 화장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박일병이 화장실 문을 확 열자 그 남학생은 사색이 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박일병은 그 남학생의 멱살을 잡고 화장실 밖으로 끌어내 곤봉으로 아까 때렸던 뒤통수를 다시 또 후려 갈겼다. 비명을 지르며 마당으로 쓰러져 나뒹구는 그 남학생의 목과 배를 만수는 소총 끝에 달린 대검으로 사정없이 찔렀다.
만수와 박민종 일병이 그 남학생을 그렇게 처참하게 도륙을 하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건장한 체구의 40대 남성 네 명이 몽둥이와 보도블록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만수와 박일병이 총검과 곤봉을 휘두를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은 만수와 박일병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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