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蜂起
제1부 - 꿈아 무정한 꿈아

인당수(印塘水)의 전설이 서린 임수도(臨水島) ④

“놔아!...
이것 놔아!...
아 씨팔, 이것 놓으라구!....”
풍진세상을 억척스럽게 헤쳐 온 궁자의 손등엔 벌써 좁쌀 만 한 검버섯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대수의 허리춤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은 어쩌면 크레인의 와이어 로프 보다도 더 강한 생명줄이었다.
연약하지만 강인한 궁자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며 악다구니를 쓰는 대수는 흡사 이 고샅 저 고샅 싸돌아다니다가 쥐약을 핥아먹고 발광한 똥개 같았다. 미쳐서 날뛰는 대수가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붙들다보니 궁자는 기운이 다하고 맥이 다 빠져서 스스로를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대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자신의 허리춤을 붙들고 있는 궁자의 양쪽 팔뚝을 움켜쥐었다.
“놔아!...
이것 못 놔아!...
에이 씨팔년아 이것 놓으란 말야!....”
제 정신이 아닌 대수의 입에서 패륜의 쌍욕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궁자는 이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대수의 초인적인 완력 때문에 두 손으로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허리춤을 놓친 상태였기에 그녀의 정신은 온통 다른 데 쏠려 있었다. 여차하면 난간을 뛰어 넘을지도 모를 대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수야!...
대수야!...
야 이 썩을 놈아 으디를 갈라고 이러냐!....”
대수야!...”
궁자가 판단하기로는 대수가 다시 올라서려고 용을 쓰는 훼리호 2층 갑판 위의 철제 난간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었다. 이 때문에 궁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대수를 죽을 힘을 다해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궁자는 난간 상단에 다시 또 오른 발을 올리는 대수를 향해 잽싸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대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바다에 뛰어들려는 대수와 조카의 투신을 저지시키려는 궁자 사이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질러대는 괴성과 비명은 훼리호 기관실에서 빠져 나오는 엔진소리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 했다.
몸싸움이 벌어진 지 채 30초도 안 됐다. 대수를 끌어안은 궁자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객실 외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궁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대수는 이를 알아 차리지 못한 듯 벌떡 일어서더니 난간 앞으로 다가섰다.
철제 난간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서서 거북바위를 응시하고 있는 대수의 이마와 목덜미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궁자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얼굴과 목, 그리고 손등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났지만 대수는 그런 상처에 신경을 쓸 정신이 아니었다.
육신의 아픔과 고통에 무뎌진 영혼이었지만 의식은 또렷해지는 듯 했다. 마치 격정적인 성교를 끝낸 뒤끝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그 투명한 의식 속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을 끊고 나오면서부터 머릿속에 새기기 시작한 어머니의 이미지 컷은 수십만 장, 아니 수백만 장, 수천만 장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계실 저승 어귀를 서성이고 있는 대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어머니의 이미지 컷은 단 한 장뿐이었다. 서해훼리호 참사 때 물속에서 인양한 뒤 시신 확인과정에서 하얀 천을 걷어 올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들여다 본 어머니의 처참한 얼굴이었다.
“어머니!...흐흑!...흑흑!...”
대수는 난간 상단에 다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난간을 훌쩍 넘어 인당수의 전설이 서린 임수도 앞바다로 뛰어 들었다.
대수가 저승을 향해 길을 떠난 뒤, 훼리호 2층 갑판에 쓰러져 의식도 없이 드러누운 궁자의 머리 맡엔 선홍색 피가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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