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군대에서의 일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였는데 어느날 ‘폭력금지’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내무반에서 장병들끼리 혹은 장교가 장병들을 교육할 때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폭력을 금지하고, ‘민주병영’을 만들라는 지침이 내려온 것이다.
대위였던 장교는 내무반에서 ‘폭력금지’ ‘민주병영’에 대하여 교육을 하고, 절대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병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못된 병장 하나가 후임병들을 모아놓고 폭력을 행사했다. ‘민주병영’ 이야기 듣고 군기(?)가 해이해 질까 봐 미리 분위기를 잡는다는 명목이었다.
며칠 후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경로였는지 그 장교에게 전해졌다. 장교는 모든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그 못된 병장을 앞으로 불러 내었다. 장교는 모든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못된 병장을 무참하게 짓뭉갰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그 병장은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것같은 작은 틈으로 숨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때리면서 장교는 계속 한가지만 중얼거렸다. “때리지 말란 말이야! 때리지 말란 말이야!...”
때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무참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 모습! 이 자기모순에 빠진 행태를 겪으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런 행태가 현실에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에게 험악한 감정적 폭력을 행사하면서 ‘바른 교육’을 말하는 일부 부모, 정의로운 사회를 가르치면서 돈을 강요하는 일부 선생님, 너희들을 잘 단련시켜준다며 패대는 일부 선배, 등등. 하나같이 당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고마워해야 한다고 강요되는 경우들이다.
그런데 더욱 희한한 일이 있다. 이런 상황이 사회에서 일부 암묵적으로 용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병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완전히 모순되는 상황처럼 보이지만, 장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럭저럭 용납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그것은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이다. 그 익숙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던가?
한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이던 때가 있었다. 어린 학생이었을 때 필자는 이것이 참 창조적이고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박정희는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살했다. 이것만으로도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직접 선거권마저 빼앗아갔다. 민주주의가 결코 아닌 것이 버젓이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하나의 ‘민주주의’인양 찬양되던 자기모순의 사회행태, 이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 잔재는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깨끗이 청산되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선거판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자기모순적인 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을 본다. 서민을 착취하는 부자들이 모여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대책을 내세우고, 젊은 세대를 가로막는 늙고 낡은 정치인들이 모여서 새로운 시대를 주창한다. 독재를 행했던 사람들이 민주사회를 이룩하겠다고 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모여서 부패청산 방안을 마련한단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앞의 군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장교의 그 무참한 구타 사건 후로 폭력이 사라졌을까? 전혀 아니다. 도리어 기승을 부렸다. 폭력은 언제 사라졌을까? 그 사건 당시 일병이었던 일군의 장병들이 병장이 되어서 자신들이 맞았던 것을 후임에게 전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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