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청자상감동화모란.구름.학무늬화분,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 출토,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 (사진2)청자동화연화무늬표주박모양주자,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국보 제133호
▲ (사진3)청자상감동화국화무늬합 내부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사진4)청자상감동화모란문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346호

겨울이 오려는지 유난히 잿빛 하늘이 잦은 요즈음입니다.
철새들도 무리지어 날고, 지는 석양에 붉은 빛은 보기만 해도 온기를 주는 듯합니다. 잿빛 하늘에 물든 석양을 보고 있자니 고려청자의 붉은 빛 안료가 문득 연상됩니다.
고려청자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 중에 ‘유약(釉藥)’과 ‘안료(顔料)’가 있는데요, ‘유약’은 청자 표면에 씌우는 잿물이 주성분인 액체로서 코팅효과가 있어 수분이 그릇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며, 유리질 성분이기 때문에 투명한 광택이 있습니다.
‘안료’라는 것은 자기에 무늬를 새기거나 그릴 때 사용하는 색소성분으로 붉은색은 산화구리, 검은색은 철분, 흰색은 백토 등의 안료를 이용하여 청자에 화려한 색의 무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려청자로 유명한 부안이나 강진 두 곳에서만 사용된 안료가 있는데요, 흔히 ‘진사(辰砂)’라고 부르는 안료가 그것입니다. 청자에서 붉은색을 내는 안료로 산화구리성분으로 무늬를 그린 것입니다. 붉은색 때문에 일명 ‘진사(辰砂)청자’라고도 불리지만 진사는 적색유화수은으로 수은과 황의 화합물로서 염료나 약재의 원료로 사용되었으며, 도자기의 안료인 산화구리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동화(銅畵 산화구리 안료로 무늬를 그린 것)청자’ 또는 ‘동채(銅彩 산화구리 안료를 그릇 전체에 입힌 것)청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산화동은 가마 안의 불의 상태에 따라 녹색, 검은색, 붉은색 등 다섯 종류로 색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안료입니다. 대체로 산화불의 경우에는 녹색을, 환원불의 경우에는 붉은색을 띠게 되구요, 현재 남아 있는 청자 작품 중에 무늬에서 붉은색과 녹색이 함께 관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산화구리로 붉은색을 낸 것은 14~15세기 원․명대에 들어서였으니까 세계 최초로 산화구리 안료를 이용하여 도자기에 붉은색을 구현해낸 나라는 바로 고려입니다. 고려시대 부안 유천리와 강진 사당리 청자가마에서 13세기 전반 무렵에 제작에 성공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안과 강진의 산화구리 안료는 표현수법이 좀 다른데요, 강진 사당리 청자가마터에서는 산화구리안료를 그릇 전체에 씌운 동채청자가 발견되었구요,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에서는 모란꽃이나 포도동자무늬를 상감하고, 이 무늬의 일부분(모란꽃잎 끝부분, 포도송이 등)에 산화구리로 포인트를 주는 방식의 상감동화청자가 제작되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산화구리 안료는 다루기가 어려운 만큼 제작된 유물의 양이 극히 적어 희소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작지가 명확히 알려진 동화청자로는 현재 부안청자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 파편이 소량 전해지고 있을 뿐이며(사진1), 그 외 지역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화청자로 가장 명품을 꼽으라면 삼성리움미술관 소장의 국보 제133호인 ‘청자동화연화무늬표주박모양주자(靑瓷銅畵蓮花紋瓢形注子)’가 있습니다.(사진2) 이 유물은 고려 무인정권의 최고 권력자였던 최항(崔沆, ?~1257년)의 무덤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해오는 것으로 1257년을 전후한 시기에 부안 유천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표주박모양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이루었으며, 양각과 음각으로 연꽃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연꽃잎마다 테두리를 산화구리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하였습니다. 주자의 잘록한 목 부분에는 작은 크기의 소년 한 명이 연가지로 연결된 연봉오리를 감싸 안고 있으며, 손잡이와 주구, 뚜껑 등에도 연잎, 개구리, 연가지, 연봉오리 등의 소재로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기교를 부려 장식하였습니다. 이렇게 당당한 자태 속에 섬세한 세부장식이 균형미를 이루고, 맑고 투명한 비색의 발현, 산화구리라는 특수한 안료의 사용, 최항이라는 인물과 연결된 역사적 의미 등이 더해져 세계 10대 명품고려청자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소장되기까지 이 작품도 우여곡절이 많았구요, 삼성 이병철 회장의 결단으로 일본에서 되찾아 왔다고 합니다. 이 밖에 화장용기로 사용된 ‘청자상감동화국화무늬합’은 크기는 작지만 무늬의 화려함과 합 내부에 장식된 연줄기로 분할된 네 장의 연잎은 다른 합에서 볼 수 없는 특징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사진3)
끝으로 한 작품을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보물 제346호인 ‘청자상감동화모란무늬매병’은 몸체 세 곳에 커다란 모란꽃을 시원스럽게 흑백상감한 후 꽃잎과 꽃봉오리 끝부분에 산화구리 안료를 칠해 무늬를 돋보이게 하였는데요, 화려한 무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유약의 빛깔과 매병의 우아한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고상한 맛이 절로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유물입니다.(사진4) 이 작품도 우리 부안 유천리에서 만들어졌겠지요!
오랜 세월 유물을 대해왔지만 명품이라는 수식이 붙은 고려청자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예쁘고 잘 만들어진 외형 때문이 아니라 유물마다 간직하고 있는 성품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려청자를 마음에 품고 그의 맑은 성품을 닮고자 오늘도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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