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을 끌고 가는 노인의 리어카에 실린 폐지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한 끼의 밥을 얻기 위해 1시간씩 줄이 늘어서는 TV화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빚더미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불량정치다. 바야흐로 대선이 코앞이다. 관심의 초미에 걸맞게 대선후부의 말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세상에는 많은 글이 있고 말이 있다. 이것을 싸잡아서 언어라 하고 그 언어에는 국민성과 그 나라만의 문화가 담겨 있다. 또한 언어의 구사에 따라 각자의 가치관과 철학이 드러난다. 말은 대자적 관계로서 따듯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말은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다. 특히 정치인의 말은 대표성을 띠므로 신중해야 하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신중에 신중을 더 해도 부족함이 없다. 역대 정치인 들이 말을 함부로 하여 낭패를 본 사람이 참으로 많다. 장관을 지냈던 모 소설가는 “공업용 재봉틀로 입을 꿰매버리겠다”는 말을 해 세간의 이목이 된 적이 있다.
물의 같은 표현이라 할지라도 ‘냉수’라 함은 사람이 마시는 물이라는 것을 함의 하고 ‘찬물’은 세수나 등목을 하는 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은 어휘의 표현에 따라 그 언어가 갖는 의미는 다르며, 그 다름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침이슬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이 지니는 힘 또한 차이가 있고 그 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 무심코 찬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말은 기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다. 말이란 입으로 하는 것도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은 물론이며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알 수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 주최 TV토론회를 제외하고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34회, 2002년 제16대 대선에는 83회,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44회의 언론기관 초청 TV토론회 및 대담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는 유력 주자가 모두 참석한 TV토론회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과 안철수 간 양자 TV토론과 23일 밤 박근혜의 단독 TV토론회가 고작이다. 이처럼 대선 후보 간 토론회가 역대 대선 중 가장 적은 것은 셋이 토론을 하면 2대1의 토론이 되어 불공정하기 때문이라고 박근혜 측이 말했다는데, 근자 문재인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박근혜와 문재인은 토론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처럼 거짓말 일색이라 할지라도 국민은 후보의 말을 통해 검증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토론 횟수가 많을수록 좋다. 문재인이든 박근혜든 일정부분 거짓말은 가려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때문에 토론을 피하고 싶겠고 항간에 회자되는 부족한 세계관 때문에 주저 하겠으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취할 자세는 아닌듯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승복’어린이를 우리 세대는 알고 있다.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해서 입을 찢어 죽였다는 반공사상의 우민화 속에서 필자도 성장했다. 우민화가 어디 그뿐인가 전두환의 ‘평화의 댐’ 해프닝을 비롯해 나쁜 말로 백성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가. 후보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것도 우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군의 딸에서 대통령의 딸로 공주처럼 산 박근혜. 수 년 동안 독재자의 퍼스트레이디로 국회의원으로 살아왔다. 상류층의 일이야 잘 알기도 하겠으나 한나라가 어디 고관대작만의 나라인가. 국민이 없으면 나라의 존재가치가 없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산에 올라가 본 사람과 말로만 지형을 들은 사람의 세계관은 다르다. 한 조각의 폐지에 마른기침을 얹어 새벽길을 끌고 가는 노인의 거친 숨을 그가 알 것인가. 국민은 대통령 후보의 다양한 경험과 세계관을 ‘말’을 통해 알고 싶어 한다. 침묵으로 해야 할 말을 대신하는 현실이 우리는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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