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분들도 벌써 5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인연이 닿는 대로 많은 분들을 맞이하며 부안고려청자를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고려상감청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중국 청자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고려상감청자는 중국에도 없는 특별한 무늬장식 기법인 ‘상감’을 이용한 것입니다.
‘상감(象嵌)’이라는 것은 공예품을 장식하는 기법의 하나로써 상안(象眼)․상감(相嵌)․전감(塡 嵌)이라고도 하며, 나무․도자기․유리․금속 등의 표면에 무늬를 음각으로 파고 그 안에 금․은․나전․흙․보석 등을 채워 넣는 장식기법으로, 도자공예에서는 상감, 금속공예에서는 입사(入絲), 칠공예에서는 나전(螺鈿)이라 불리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감기법이 도자기에 사용된 최초의 예는 10~11세기 고려자기가 태동하던 시기에 운영되었던 시흥 방산동 고려자기 가마터와 용인 서리 고려백자 가마터 등에서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고려자기 태동기로서 극소량의 유물에만 한정적으로 상감이 사용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청자에 무늬로 사용되어 화려한 꽃을 피운 시기는 12세기 후반~13세기경입니다. 12세기 후반~13세기는 부안에서 고려청자가 대량으로 제작되던 시기이며, 그 중에서도 상감청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늬로 청자의 절정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청자와 고려청자의 다른 점은 굽는 방법에 있습니다. 중국은 그릇을 빚어 말린 후 유약을 입혀 가마에 한 번에 구워내지만 고려청자는 그릇을 빚어 말린 후 600~800도의 낮은 온도로 살짝 한 번 구운 후 유약을 입혀 두 번째로 1,250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냅니다. 즉 중국 것은 생흙에 유약을 입히므로 유약물을 많이 흡수하여 유약이 두껍게 입혀지지만 우리 것은 한 번 구워낸 그릇 표면에 유약을 입히므로 유약이 적게 흡수되어 얇게 입혀집니다. 따라서 유약 아래 상감무늬를 넣게 되면 중국 것은 유약이 두꺼워 무늬가 보이지 않지만 고려청자는 얇고 투명한 비취색 유약층 아래로 무늬가 섬세하게 비쳐보이게 되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중국과 우리 고려청자의 매우 큰 다른 점이며, 세계의 예술품수집가들이 고려청자에 열광하는 이유입니다.
바탕흙과 유약, 그리고 백토와 자토의 서로 다른 네 개의 성분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어느 하나의 성분이라도 궁합이 맞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상감청자가 될 수 없으며,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므로 부안고려청자 장인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 몇 명만이 상감청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당시에도 고급의 상감청자는 고가에 주문된 양만큼만 제작․거래되었으며, 오늘 날 전해지는 작품 수가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천 년 전 부안고려청자 장인의 피와 땀, 숨결이 담겨 있는 얼마 남지 않은 흙으로 빚어진 보물을 우리가 조금 더 극진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후대에 전해주는 전달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시대에 전해진 모든 문화유산은 우리 것이 아니고, 우리 후손들 것이니까요!
겨울의 초입, 날씨가 춥다고 움츠러들지 마시고, 아이들 손잡고 청자박물관에 놀러 오세요. 전시동 1층에 신비로운 상감청자를 만드는 비법이 실물크기의 모형으로 하나하나 소개되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