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꿈아 무정한 꿈아

인당수(印塘水)의 전설이 서린 임수도(臨水島) ③

영혼의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선지 대수는 담배를 쭉쭉 빨아댔다. 어느새 담배는 필터 앞까지 다 타버렸다. 필터 앞에 남은 담뱃불을 검지로 힘있게 툭툭 털어 낸 대수는 담배꽁초를 엄지와 중지 사이에 넣고 튕겨서 바다에 휙 날려 버렸다. 그런 다음 볼을 흠뻑 적시고 있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연신 훔치며 거북바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적어도 수백 번은 꿈속에 나타났던 참혹한 잔상들이 또 다시 머릿속에서 펼쳐지자 대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언제부터인지 그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위도의 한자 표기로 ‘고슴도치 위(蝟)’와 ‘섬 도(島)’를 써왔다. 중국 송나라 때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그 유래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좀 더 필요하지만 ‘위도(蝟島)’는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지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고슴도치 섬 위도엔 식도(食島)라는 부속 섬도 있다. 식도는 고슴도치의 입 앞에 위치하고 있어 위도의 밥섬으로 여겨져 왔다.
두 개의 섬이 이어져 있는 듯 한 식도의 가마귀산 뒤편 바다 위엔 거북바위로 불리는 작은 무인도가 떠 있다. 거북의 머리에 해당 되는 부위는 육지 쪽으로 향하고 있고, 꽁무니는 식도 쪽으로 향하고 있다.
거북바위는 수 천, 수만 년 동안 임수도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뭍으로 달아나려고 단 1초도 쉬지 않고 헤엄을 쳤을 것이다. 고슴도치가 밥섬 식도를 먹어치우고 나면 자기를 잡아 먹으려고 달려들 것이라고 걱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밥섬 식도의 최고봉인 가마귀산의 까마귀와 뱀목의 뱀이 끊임없이 위협을 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허우적 허우적 용을 쓰며 육지로 달아나려 했던 거북바위의 꿈은 미몽(迷夢)에 그치고 말았다. 칠산바다가 오늘의 형상을 갖춘 이후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붙박고 떠서 단 한 뼘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 그 단적인 증거이리라. 어쩌면 거북바위는 고슴도치 섬 위도의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맘에 들고, 위도 사람들과 위도의 바닷새들이 정이 들어 여전히 그 지점에 그대로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거북바위 덕분에 9년전 이맘 때 대수는 천추의 한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다.
“동해야!...흑흑!...동해야!....흑흑흑!....”
설움이 북받쳐 자꾸 숨을 거칠게 쉬며 우는 대수의 머릿속엔 서해훼리호 참사 때 바다에서 건져 거북바위에 올려놓았던 세 살배기 동해의 주검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해는 대수의 큰 아들이었다. 1991년 11월생인 사내 아이 동해는 대수의 어머니와 함께 서해훼리호를 타고 격포로 나오다가 변을 당했었다.
임수도 앞바다의 차가운 바다 밑에 서해훼리호와 함께 수장되었던 동해의 시신은 사고 발생 6일 만에 거북바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뻘 속에 박힌 선체에서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어머니의 시신 보다 먼저 발견돼 대수의 비통함을 조금은 절감시켜 주었다. 하지만 표류하는 과정에서 바위에 부딪쳐서 그랬는지 아니면 바닷속 생물들의 공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한 쪽 눈은 빠져 있었고 코는 뭉개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 귀는 반으로 으깨져 있었다.
거북바위 몸통 쪽의 넓적한 바위 위에 뉘여 있던 동해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수의 아내 신은정은 기절을 했었다. 대수 역시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참혹한 아들의 주검을 수습한 다음 한 시라도 빨리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야 된다는 강한 일념으로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대수는 카훼리호 2층 갑판의 철재 난간 중간에 오른 발을 올렸다. 드디어 이 풍진 세상을 더 이상 살 가치가 없고, 이 험악한 세상을 더 이상 살아갈 자신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데는 격포에서부터 마시기 시작한 소주의 영향도 컸겠지만 서울에서 내려 올 때부터 작정을 한바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도면 용당금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다음 신정은과 가정을 이루고 서른 여덟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지난 날의 잊지 못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못 다한 이승의 인연 때문에 앞으로 보다 더 처참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작은 아들 동녘이와 애 엄마 은정이의 얼굴이 눈앞을 가로 막고 있지만 술기운에 더욱 대범해진 대수의 광란을 중지시키지는 못했다.
“아니 이 썩을놈이 워쩔라고 이런댜!
야 이놈 대수야!...대수야!...”
이미 눈이 뒤집혀 철재 난간 상단으로 올라서는 대수의 허리춤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궁자는 필사적으로 대수를 난간 안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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