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수 도 있지만 '아들 앞날' 을 한번 더 생각해 봤으면

조잘조잘, 와글와글. 둘째 아이 소풍날이다. 소풍 가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보다 더 들떠 보이는 엄마들. 꽃보다 더 화사한 옷차림과 표정은 흡사 어린 소녀들 같다.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놀이 기구에 몸을 싣고 깔깔대는 엄마들을 보노라니 아이 소풍인지 엄마 소풍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 즐거운 표정들 사이로 언뜻언뜻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잔뜩 그을린 검은 얼굴, 전혀 즐겁지 않은 얼굴, 화사한 주변 풍경과 전혀 동화되지 못하는 아이가 내내 신경에 거슬린다. 따갑기까지 한 봄 햇살에 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아이. 두꺼운 긴 팔 블라우스를 걸쳐 입은 한 아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많이 덥겠네? 엄마랑 왔어?”
긴 소매 자락을 곱게 세 번 접어 올려 주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요. 엄마는 아빠랑 싸워서 집 나갔고요, 아빠는 돈 벌러 나갔어요. 할머니랑 살아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얘기하는 아이. 그 말은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후벼 놓는다.

며칠 전 우리 부부도 사소한 말다툼이 커져 크게 싸웠다. 이혼장까지 앞에 두고서 말이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하여 주먹질까지 이어지는 싸움에서 부서지는 건 리모컨과 전화기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부서진 마음의 파편을 줍는 건 내 딸들의 몫이었다. 내 딸들의 놀란 표정과 근심 어린 눈빛은 던져 놓은 이혼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큰 애가 갑자기 울었다. “이혼하지 마! 난 엄마, 아빠가 둘 다 필요하단 말이야!” 소리치는 언니를 따라 둘째도 덩달아 울기 시작하자 우리 부부는 정말 깜짝 놀랐다. 예기치 못한 이 상황에 난감해 하던 신랑은 갑자기 이혼장을 짝짝 찢기 시작했다.

결코 승자가 있을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이 싸움은 내 딸들의 간절한 호소로 끝이 났다. 딸들을 두고 헤어지겠노라고 협박 반, 으름장 반으로 끝 갈 데 없이 가버린 싸움. 차가운 이성은 오간 데 없이 격할 대로 격해진 감정의 끝자락에서 더 이상 돌이키지 못하는 결과로 치닫는다.

급증하는 이혼율의 속내를 찬찬히 살펴보면 서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서 마침내 원하지도 않았던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부부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내내 내 딸들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얼마나 놀랐을까? 그 표정이 떠올라서 난 그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살다 보면 부부 간에 다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다툼의 끝은 더 성숙한 부부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어야지, 돌이킬 수 없는 이혼의 상처로 남아선 안 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아이들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지는 이혼과 그 결과로써 방치되는 아이들 문제는 간과할 일이 아니란 생각으로 미쳤다. 이혼의 ‘현실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앞날을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소풍 내내 난 그 아이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이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다짐했다. 우리 사랑하는 딸들에게 더 이상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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