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복지시설지원 무신경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힘들어 국가적 차원서 지원 우선돼야

김영민(85세?가명) 할머니는 2층에 산다. 이 집에 들어온 것이 스물다섯살 때였으니 자그만치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자리에 삶 터를 마련한 것도, 번듯한 2층 건물을 지은 것도 그였다.

2층에 있는 방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좁고 높다. 젊은 사람도 조심조심 걸어야 할 정도다. 노인은 이 계단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다닌다고 했다. “양쪽으로 도로가 잘라 먹어서 계단이 높아졌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좁은 방 두 개와 거실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긴 세월을 웅변하듯이 바닥은 쑥 꺼져 층이 져 있다. 바닥이 내려앉는 모양이다. “신경통으로 다리를 잘 못 써서 그렇지 치매 걸려 헛소리 안하고, 전화도 받으며 요렇게라도 사는 게 감사하다고 허요.”
말은 이렇게 해도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곧 환갑을 맞는다는 큰 아들은 작은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이다. 큰 아들은 서울에서 인테리어 일을 했는데 부도를 맞아 내려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일로 할머니의 집은 담보가 잡혔고 3년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2천만원 담보”에 60년간 살아온 터전을 뺏긴 것이다. “아들이 벌이가 없어서 집이 넘어갔어. 집 주인이 비워주라고 하는디 갈 데 없응 게 여그서 산다고 혔어. 그래도 집주인은 착한 사람이여. 살게 해중 게.”

경제적인 어려움도 만만찮다. 생활보호대상자라고 월 15만원씩 나오다가 요새 20만원으로 올려 지급되는 돈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그나마도 그 돈의 절반인 10만원이 월세로 나간다. 남은 돈을 쪼개 큰 아들, 손자 이렇게 세 식구가 먹고사는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슬하에 딸 셋과 아들 다섯을 두고 있다고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르치지도 못했는디 손 못 벌려”라며 말을 끊는다. 자식들을 못 가르치는 바람에 직업이 좋지 않고 이 때문에 돈을 못 벌고 있다는 죄책감인 듯도 했다.

김영민 할머니는 매일 10시께 좁고 높은 계단을 내려와 집을 나선다.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에서 점심 무료급식을 하는데 거기를 가기 위해서다. 자리가 모자라 두시간 전에 가 있어야 한다며 할머니는 걸음을 재촉한다. “나 같은 사람은 어쩌믄 좋냐고.” 혼잣말처럼 그가 장탄식을 내 쉰다.

‘1520원짜리’ 점심…사회의 책임

정말 갓 열시를 넘겼는데 노인회관은 벌써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붐볐다. 대부분 노인회 근방에 사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라고 했다. 무료급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43명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늦으면 그냥 돌아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시장 나갔다가 한두번 들르는 사람 등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개는 정원보다 사람이 많이 오고 혹여 다른 행사가 근처에 있으면 덜 오고 그렇단다.
한끼 식사로 쓰이는 급식 단가는 ‘1520원’이다. “사람을 쓰면 밥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노인대학교 학생 25명이 봉사대를 조직해 요일별로 밥을 해주고 있어서 운영이 됩니다. 군세가 떨어져서인지는 모르지만 부안같이 복지시설 없는 곳은 드뭅니다. 노인들이 바라는 일은 많지만 예산이 따르는 일이라 해줄 능력은 없고, 안타깝죠.” 노인회 부안군지회 김봉철 사무국장의 말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어버이날 받고 싶은 선물이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왔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그는 “경제력이 있다든지 사는데 제약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고 일축했다. 노인들이 힘든 것은 단순하게 외로움 때문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과 병마 때문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들딸이 무관심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가에서 복지시설에 투자를 해서 병원을 세우고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쾌한 할머니들…노인끼리 도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는 동안 옆방에서는 반찬 만들기와 밥 짓기가 한창이다. 양쪽이 모두 시끌벅적하다. 옆방에서 밥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70세 이상 먹은 할머니들이다. 노인회 부설 노인대학 학생들이라고 했다. 벌써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젊었다는 김용신(72) 씨는 여기에 나오려고 아침 8시40분 차를 탄다고 한다. 생각이 젊은이나 진배없다. 네명이 같은 조인데 상추나 쑥갓 등 채소는 그냥 집에서 뜯어오기도 한다.

“내일 밥하러 가는 날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도 들고 용기도 생겨. 집에 있으면 누워 있기나 하고 그러는디 여그 나올라면 머리라도 빗고 얼굴에 뺑끼라도(화장이라도) 칠해야지. 여그 나오믄 심심하지 안 혀서 좋아. 조금 욕봐도 사람들 먹이믄 좋지.” 쾌활한 허순례(74) 씨의 말이다. 그리고는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자 “우리가 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생활이 봉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이는 또 다른 기쁨으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뚫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세대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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