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아이 키우는 유미옥씨의 수기

마당 가득 핀 갖가지 꽃들과 투명한 여린 잎들의 나풀거림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가슴에 담고 있을 때, 낯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전북장애인신문사인데요, 응모하신 수기가 대상에 선정됐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알았을 때 너무나 절망스럽던 시간들, 어떻게든 치료해보려 앞뒤 가리지 않고 허덕이던 시간들, 거듭되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마른 논바닥 같던 시간들. 삶의 고단한 끝자락에 한 뼘만큼씩 깊어지는 마음의 깊이에 십년 세월 서럽게 흘린 눈물들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제 아들 하누리는 2살반 때 자폐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이지만 부모의 능력이 되는 한 모든 병원과 의료진을 대면했고 국내외 알려진 모든 치료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미국에선 국가적으로 이 병을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까지 가서 가능한 한 모든 관계자를 만나 보았고 또 효과를 보았다는 모든 치료?교육 방법을 배워 보았습니다. 결국 가족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누리에게 지난 5년 동안의 부안 생활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의료진의 검진보다도, 미국이나 중국의 어떤 약이나 교육방법보다도 더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눈 맞춤도, 정서적 안정도, 편안한 성격 조성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변산반도를 선택하고 주말부부를 감수하기까지 누구보다 특히 저에겐 더 큰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자폐아와 그 아이 못지않게 예민하고 예술적 감각이 온몸을 휘감은 큰 아이, 이 둘을 혼자서 키우기란 참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오직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아이와 눈을 맞추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하면서 지쳐 가는 심신을 자연에 의지하고 생활하던 어느 순간부터 하누리는 엄마와 뽀뽀하고 엄마와 눈을 맞추며 엄마 품에 안기며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우호적인 관계 성립은 엄마에서부터 아빠에게로, 누나에게로,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로 퍼져 갔습니다.

야생마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3년. 우리 가족은 이제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쉴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의 건강은 바닥났지만 하누리는 그 대가로 확실히 더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아빠가 서울 생활을 멈추고 하누리 교육을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하누리가 교육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아빠만큼 하누리에게 힘 있고 치밀한 교육을 해줄 특수교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고의 교사는 부모니까요.

가족의 사랑 안에서 안정적이고 평온한 성품이 만들어진 하누리이지만 막상 교육을 시작하려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으로 24시간을 하누리와 교육의 시간으로 썼습니다. 산행을 다니며 나무, 꽃, 흙을 가르치고 자꾸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키며 상호작용을 유도해냈고 책상에 앉는 것부터 색깔, 낱말카드, 숫자카드, 그림카드, 퍼즐 등. 특수교육을 공부하듯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습니다.

이렇듯이 온 가족이 번갈아 하누리와 놀아주며 공부해 가던 중 아빠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결국 엄마도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하누리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과 함께 그 동안 미루었던 입학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누리가 벌써 2학년이 되었습니다. 바로 1년 전 오늘, 부족한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며 그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우리 가족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1년 후, 우리는 너무나 당당히 아이의 새 학년 새 학기를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하누리의 변화는 결코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이 아닙니다. 통합교육이 하누리에게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같은 교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매일 하누리에게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친구들은 쉴새없이 하누리에게 말을 시키고 놀이에 초대합니다. 저 또한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제 자식이라 생각하고 제 아들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우려 노력합니다.

제 아들 하누리는 하느님이 보내 준 천사임이 분명합니다. 하누리 덕분에 집에는 노랫소리가 끊일 수 없고, 하누리 덕분에 참 좋은 분들을 많이도 만나게 되었고, 하누리 덕분에 아름다운 자연 생활을 접하게 되었고, 또 하누리 덕분에 수없이 많이 울고 웃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삶의 다른 측면을 바라보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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