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살리기 등 다른목적보다 우리안의 평화와 화합을 먼저 찾아야

혼자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먼 산을 바라본다. 넉넉한 산자락에 안긴 마을 위로 쏟아지는 봄볕이 적막하다. 아직은 빈 것 같은 논밭머리로 푸릇푸릇 곡식들이 싹터 일어선다면 팍팍한 괭이질에 지친 마음이 저 산처럼 조금은 넉넉해질까? 호락질(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족끼리 농사짓는 일)로 하는 일은 몸을 곱절로 힘들게 한다. 그걸 알면서도 삯꾼을 사거나 품앗이할 형편이 안 되는 나는 대부분의 농사일을 혼자 할 수밖에 없다.

사람 손으로 하던 일들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농촌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한자리에 모여 일의 순서를 정하고 풍물과 노랫가락이 어우러지던 농촌, 크고 작은 축제와 놀이로 항상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농촌 마을은 이제 옛추억으로만 남았다.

이렇듯 마을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던 축제와 놀이문화가 사라지고 언제인가부터 면이나 군에서 만든 축제들이 농촌의 문화를 채워 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의 축제이기에 마을 축제와는 다른 성격과 모양새를 갖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애써 만들어 낸 지역축제들이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주민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하거나, 한 번의 행사로 그치고 마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얼마 전, 곰소항에서 알주꾸미 축제가 있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열린 행사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축제였기에 남다른 관심으로 시간을 내어 행사장을 찾아보았다.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겠으나 내 느낌과 소견으로는 곰소항 알주꾸미 축제가 진서의 고유한 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소항의 축제가 곰소의 독특한 멋과 맛을 지닌 지역축제로 커가기를 바라며 이번 기회에 지역축제에 대한 생각들을 함께 정리해 보았으면 한다.

지역축제를 준비할 때 가장 앞세워야 할 것은 주민화합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경제 살리기나 다른 어떤 목적보다 ‘우리 안의 평화’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안에 화합과 평화가 없다면 먼 길을 찾아 온 손님들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은 반목과 질시의 모습뿐일 것이다. 그런 바늘방석에 앉아 편안하게 여흥을 즐기고, 다음에 다시 찾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축제는 무엇보다도 불편한 관계와 다툼들을 하나로 비벼내는 ‘비빔그릇’이어야 한다. 이 그릇 속에서 잔치마당에 흔히 드러나는 바가지 상술이나 정치인의 사사로운 계산들까지도 함께 버무려져 모두가 골고루 자기 그릇을 챙겨 가는 완전한 ‘비빔밥’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축제의 내용도 중요하다. 볼거리와 먹을거리는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은 집에 앉아서도 보고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이다. 구지 복작대는 마당에서 마다하지 않고 찾는 이들은 무언가 스스로 느끼며 체험하기 위해 온다. 의미에 걸맞는 체험과 독특한 느낌을 간직하고 돌아갈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면 그 축제는 얼마 못 가 식상한 잔치가 되고 말 것이다.

지역 간 연계는 느낌과 체험할 거리의 다양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치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알주꾸미 축제 기간 동안 격포에서는 주꾸미 잡이와 관련된 체험을, 그리고 곰소를 곰소답게 하고 있는 염전 체험과 젓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전 및 젓갈 시식,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도예 체험, 줄포 갈대밭의 연날리기 등을 함께 묶어 낸다면 축제의 내용이 훨씬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런 큰 틀의 계획을 위해서는 함께할 이들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과정부터 문을 활짝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짚고 싶은 문제는 생태와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축제는 우리 인간들의 잔치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의 교감과 소통의 장이어야 한다. 빈 술병과 쓰레기가 나뒹굴지 않는 축제, 땅속에 사는 미물들까지도 ‘어허 덩더꿍’ 함께 춤출 수 있는 신명나는 대동 굿판이 내가 진정 바라는 축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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