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 3년째 아내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임준환 씨

백년가약을 맺어주는 사람을 월하빙인이라 한다. 흔히 중매쟁이라고 하지만, 그 유래는 부부의 연이 하늘에 있음을 의미하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당나라의 위고라는 사람이 여행 중에 달빛 아래서 독서하고 있는 노인을 만나, 자루 속에 든 빨간 노끈의 내력을 묻자, 노인은 본시 천상에서 남녀의 혼사문제를 맡아보는데 그 노끈은 남녀의 인연을 맺는 노끈이라 하였다. 노인의 예언대로 위고는 14년 후에 결혼했다. 월하노인과 얼음 위에서 얼음 밑의 사람과 대화하는 꿈을 해몽한 이야기 빙상인을 합하여 월하빙인이 나왔다고하니 부부의 연은 질기고, 깊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7시 30분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가재의 꼬리를 잘라내고 옆구리를 잘라 껍데기를 벗겨 냈다. 어제 상설시장을 갔다가 제철을 맞은 가재가 대야에 그득하게 담겨진 것을 보고 언젠가 아내가 맛있게 먹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거동이 불편하여 누워만 있다보니 통 입맛이 없는지 잘 먹지를 않는다. 그래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재가 아내의 입맛을 돋워 줄 수 있을 것 같아 손질이 많이 가는 것을 알면서도 사왔던 것이다. 조금만 서두르면 얼추 시간을 맞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준비해둔 반찬거리와 가재조림을 챙겨 집을 나왔다.

3년째 병상에 누워만 있는 아내는 용케도 그만은 알아본다. 그의 아내는 혈관성치매를 앓고 있다. 뇌혈관질환에 의해 뇌조직이 손상되어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인데, 자식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남편만은 정확히 알아본다. 준비해간 반찬을 풀어 놓자 아내는 또다시 엉뚱한 소리를 한다. 적당히 말대꾸를 해주고 달래서 밥을 먹여주자 이 번엔 삼키지를 않는다. 아내의 이런 모습에 오늘따라 부아가 치밀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입맛을 돋워줄 생각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도통 먹으려 하지 않으니 화가 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는 치미는 부아를 눌러가며 어르고, 달래서 먹여보지만 마찬가지다. 아침밥을 사이에 두고 부부의 대치가 계속되자 이번엔 간병인이 한 마디 거든다. 환자분이 스트레스 받으니까 먹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수저를 내려 놓았다. 그는 아내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 아내는 연하곤란(삼킴장애)으로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먹지 않는 것을 무턱대고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밥을 먹을 때마다 매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천진스런 아이가 돼버린 아내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화기는 사라지고 뜻모를 슬픔이 찾아왔다. 동진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아내와 21살에 결혼했으니 같이 산 해수만 해도 58년이다. 한때는 고운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늙어서 애가 돼버렸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잘해 준 게 없다. 동네 노인분들에게 십 년 넘게 점심을 대접하는 봉사도 자청해서 해왔지만, 정작 아내에게 잘해 준 기억은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군소리 한 번 없이 6남매를 키우느라 늘 소처럼 일만 하던 모습밖에는 없으니. 갑자기 콧등이 시리더니 눈물이 질금 솟구쳤다.

아내의 병상을 지키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빈자리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집안 구석구석 모두 아내의 빈자리로 쓸쓸하지만, 아내가 아직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의사며 변호사로 출세한 자식이 있다곤 하지만, 세상에 남편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임준환 씨는 1934년 동진면 본덕리 본덕마을에서 태어났다. 혈관성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3년째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늘이 맺어준 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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