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농사를 친환경으로 바꾸고 나서 겪었던 몇 차례의 실패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작목반 조직이 한참 커질 무렵이었다. 출하한 쌀에서 농약이 검출된 것이다. 일반 농산물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친환경 농산물에서는 중대한 사고가 된다.2008년 10월 31일의 일이다.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는 청와대까지 투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를 거쳐 농관원의 조사가 있었고 이후 석 달간 악몽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경제적인 손실도 컸다. 돈, 조직, 정신적인 고통 등 엄청난 수업료를 치렀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고름이 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돈을 목적으로 농사를 바라보는 한 사고는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거였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었고 회원도 면적도 1/4로 줄어들었다. 자체적인 관리체계를 다시 만들고 교육을 일상화했다. 이후 2년 동안 생산물에 대한 농가별 전수조사를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진행했다. 다행히 그 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술하게 넘어갔던 모든 것에 대해 재정비했다. 목적이 좋더라도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진실에 더욱 확고하게 접근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결과에 대한 집착과 그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무시는 많은 사고를 일으킨다. 이명박 정부 핵심 측근들의 비리와 저축은행사태가 그렇고 최근의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그러하다. 서로 대칭점에 서 있는 양대 세력이 저지르고 있는 실망스러운 사건들은 본질이 같다. 돈을 벌려는 욕망, 권력을 가지려는 욕망이 그들을 무덤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실망을 안겨준 이명박 정부와 돈을 벌려고 하는 집단들의 이전투고와 비리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들을 단죄하고 희망이 되어야 할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부정 다툼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80년대 치열한 삶을 살았던 많은 이들은 혁명을 갈망하였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지고지순의 진리였다. 운동의 정파들은 자신의 지고지순한 변혁의 논리를 확인하기 위해 밤새워 사상투쟁을 벌였다. 때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인지 그 싸움에서 이기자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치열했던 고민은 치열한 아집으로 바뀌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묵인하고 때로 조장하기도 한다. 평화와 통일, 평등과 복지를 주장하더라도 그 추구의 과정이 진보답지 못하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통합진보당에 투표했던 10%의 국민과 경향적으로 진보의 입장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다. 이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통합진보당은 해체하는 것이 낫다. 아니 해체의 길을 걸을 것이다.

정당한 사회는 정당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비단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변칙과 술수는 결국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 절간에서 고스톱을 치는 중들이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이끌 수 없는 것과 같다. 빨리 가려고 서두르는 길이 결코 지름길일 수 없다. 너무 부지런해도 못자리를 엎어버린다. 과연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서늘한 밤안개 사이로 어스름 별빛이 차가운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 유재흠(하서미래영농조합법인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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