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거친 손 보며 가슴이 뭉클

“인애야, 일 가자.”

엄마께서 분명히 날 깨우시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처절하게’ 잠을 청하였다.

‘나는 분명히 학교 쉰다고 했지, 가정체험학습일이라 안 그랬는데….’

저 눈치 빠른 아줌마, 오늘은 아무일도 안 시킬 줄 알았다. 내가 일을 해도 일을 한 건지 안한 건지 구별이 안 되도록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아주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쩌렁쩌렁하게 부르시는 엄마. 한 번만 불러도 다 알아 듣는데 아마도 열번은 족히 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열심히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엄마의 목소리를 안 들으려는 나였다.

그런데도 자꾸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 때문에 짜증을 내며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내 전용 작업복. 할머니가 ‘몸뻬’ 바지를 개조시켜 주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에 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약통을 이리저리 살피시고는 서로 말다툼을 하시다가 또 이리저리 살피기를 반복하다시피 하셨다. 왜 저러시는지, 쯧. 그런데 저 수돗가에서 깔깔대며 웃는 내 동생들. 얼굴에 거품이 묻어 있는데도 좋단다.

‘근데 쟤네들도 가정학습일인데….’ 왜 가방만 빠는지 괜히 나 혼자 일 나간다는 억울함에 엄마에게 따졌다.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하시는 엄마. “저게 쟤네들 일이야.” ‘헉!’ 순간 이 말을 듣고 혈압이 오르는 듯했다. ‘나도 가방 빨 거라고~오.’ 너무나 분해서 동생들에게 일 갔다 올 동안 방 청소 안하면 혼낸다고 협박하고 집을 나왔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부모님을 도와 양파밭에 농약 뿌리는 일. 아버지의 자가용 경운기를 타고 밭으로 향하였다. 경운기는 맨날 타 봐도 역시 무섭다.

첫 번째 코스는 감교밭. 처음에 이 밭을 보고 비웃었다. 너무나 작은 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스가 왜 이리 무거운지 그걸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죽는 줄 알았다. “힘이 그것 밖에 없냐” 하면서 꾸짖음도 듣고, 정말 욕 밖에는 들은 것이 없었다. 첫 번째 밭만 했는데도 이미 내 상태는 녹초가 되어 버렸다. 오늘따라 햇볕도 따가워 얼굴이 따끔거렸다.

첫 코스를 마치고 두 번째 코스로 향했다.

‘헉!’

아까 첫 밭보다 조금 컸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밭에 난 길이 엄청나게 심각한 걸 빼고는. 길이 마구 엉켜 있으면 호스도 이리저리 막 움직여야 하므로 희생되어야 하는 건 나뿐이었다. 거기다가 바람이 이상하게 불어 농약이 자꾸 내쪽으로 와 기침하고 미치는 줄 알았다.

마지막 최악 코스, 거대한 밭! 이것은 내가 일을 엄청 많이 한 곳이고 농약도 많이 들이쉰데다가 아까의 밭보다 일을 2배로 해야 되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자 나오는 건 한숨뿐. 호스 끌다가 그만 고랑에 빠지기도 하고, 신발 끈이 풀려도 그냥 일을 하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얼굴에 흙도 묻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일하다가 일이 잘 안돼서 싸우기도 했다. 너무나 짜증났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일을 다 마쳤다. 와아, 이 행복! 정말 나 자신에게 이렇게 감동받는 건 처음이다. 나는 내게 참 잘했다며 칭찬을 막 해주었다. 이왕이면 부모님께 받고 싶었는데 아무말 없으신 부모님. 너무 무심하기만 하였다. 적어도 ‘수고했다’는 정도 말 한마디라도 해주실 줄 알았는데…. 괜히 뾰로통해져 부모님이 미웠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을 아무 말 없이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자니 아까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부모님께 더 미안해 했을 것이다. 오늘따라 울퉁불퉁 거친 손이 너무 보드랍고 따뜻해 보이고 얼굴은 그을려서 좀 거무잡잡하셨지만 환하게 보였다. 괜히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쪽이 뭉클했다.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 미안했다. 이번 일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꼈다. 내가 뭘 해야 되는지도. 꼭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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