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정은 깊어, 30만원 쾌척...동네 봄 나들이

부안경찰서 서림지구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구영(九英)마을 김순 이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 보통이 아니다. 마치 삭막한 도시에서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 ‘달동네’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구영마을의 유래는 느낌과 사뭇 다르다. 조선 초기에 신령한 도사가 성황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다 여기를 가리키며 아홉 호걸이 나올 거라 예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뒤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영월 신씨 가문의 아홉 형제가 영특해 크게 번창하면서 구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터가 그만큼 좋다는 것을 에둘러 얘기하는 것이리라.

현재 구영마을은 아홉 호걸을 낼 만큼 번창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성을 마을의 수장으로 뽑은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부안읍 74개 마을 가운데 여성 이장은 10명에 불과하다.

김순 이장은 천상 아줌마다. 집에 일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나, 그냥 지나치다 불쑥 들어서는 사람이나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는다. “어르신들이 예삐 봐서”라며 이장된 사연을 단순하게 얘기했지만 미리 시험을 치르고 나서 뽑혔다. 꼭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시험을 본 셈이다.

부녀회장을 하다가 이장이 아픈 바람에 그 역할까지 떠맡은 것이 지난해 7월이다. 그뒤로 이장 일을 맡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계속 하다 보니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는 지난 2월 말에 투표를 통해 정식 이장이 된 것이다. 정식 이장이 되고 나서는 “마음이 훨씬 넓어졌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30년 살아 동네 어르신은 잘 알고 도움 받을 곳도 많으니 그때보다 하기가 쉬울 거라는 자신감 덕이다.

그런데 “심부름 하다가 요령이 생겼다”는 그가 한 달을 기껏 넘기더니 일을 꾸몄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구인사(求仁寺)로 봄 나들이를 떠나기로 한 것. 김이장은 30만원을 쾌척해 버스를 대절했다. 그리고는 “여자라 통이 작다”고 너스레를 떤다.

“있으면 더 내고 싶어요. 남편 없이 생활을 하다 보니까 마음으로는 먹는 것까지 부담하고 싶어도 힘드네요.”

그래도 동네 사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우선 마을에 노인들이 많고 그만큼 영세민도 많다. 그도 “영세민이 많아 회비 같은 것 걷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재정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현재 구영마을 70가구 가운데 60세를 이상 인구는 대략 70명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70~80대이고 90세를 넘은 노인도 두 명이다. 영세민도 27세대에 달한다. 부안읍에서도 구영마을의 영세민이 가장 많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밖으로 열려 있고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모양이다. 잘사는 아랫동네보다 못사는 윗동네가 더 정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회관에 모이라고 하면 우꺼테(윗마을) 양반들은 꼭 올라와요. 서로 도와주고 먹을 것이 회관에 없으믄 내 것 갖고 와서 노나먹고(나눠먹고) 그래요. 단합은 잘돼요.”

요즘은 민방위 훈련 통지서 때문에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한 지붕 아래 보통 2~3가구는 사는데 사람들이 돈 벌러 객지에 나가 있어 대부분 문이 잠겨 있다고 했다. 쉽지 않은 동네에 어려운 살림을 김순 이장의 넉넉한 품으로나마 보듬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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